장애인이 없는 나라 | 장애와 비장애, 경계 무너뜨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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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학습
장애인이 없는 나라 | 장애와 비장애, 경계 무너뜨리기
  • 출판사유레카엠앤비
  • 잡지명유레카

2018년 9월호 특집


장애인 없는 나라

장애와 비장애, 경계 무너뜨리기

 

전체 인구의 5%가 일상적 공간에 잘 보이지 않는다. 

학교, 직장, 버스와 지하철, 거리에서 쉽게 눈에 뜨이지 않는다. 

외국인들은 한국은 장애인이 없는 나라인 줄 알았다고 말한다. 

장애인이 보통의 삶을 이어가기 위한 인프라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장애를 향해 간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노인이 되면 일상적 생활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장애란 무엇인지,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무너뜨려 

모두 함께 잘 사는 건강한 사회를 위해 당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글 유레카 편집부

 

18 특집맛보기|이불여일

22 특집맛보기|유니버설디자인

24 키워드 리포트 

 01 장애인, 그들은 유령이 아니다

 02 약자를 위한 디자인, 우리 사회를 리디자인하자

 03 더 이상 존엄을 짓밟지 말라

 04 장애인 복지, 장애인 노동권 

 05 격리되지 않을 권리

30 특집플러스 | 장애인 기본권 투쟁

32 찬성VS반대 |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할 수 있나?

36 특집인터뷰 | 웃음이 아름다운 사람, 천혜영

 

<유레카> 9월호는 '장애' 특집입니다. 아래 내용은 '키워드 리포트'와 '찬성과 반대' 코너에 실린 내용 일부입니다. <유레카>는 특집을 비롯해 문학, 비문학, 영화, 사회, 시사 등 다양한 내용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01 장애인, 그들은 유령이 아니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상공에 정체불명의 우주선이 불시착한다. 이윽고 지구인들은 인근에 외계인 격리구역 ‘디스트릭트 9’을 만들어 외계인들을 가두고 방치한다. 외계인들은 외부에서 식량과 생필품을 조달받아 수용소 안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듯 보이지만, 이것이 과연 진정한 자유일까? 영화 <디스트릭트 9>의 줄거리. 이들 외계인의 생활상을 지금 한국의 장애인의 삶과 오버랩한다면 과도한 논리적 비약일까?


2017년 조사에 따르면 장애인 수는 전체 인구의 5%가 조금 넘는다(5.39%). 20명 중 1명은 장애인이라는 뜻이다. 이 수치를 염두에 두고 우리 주위를 둘러보자. 가족, 친구, 지인들을 떠올려보고,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휴대폰 주소록의 이름을 쭉 살펴보자. 우리의 삶에서 장애인은 얼마만큼을 차지하는가? 이십분의 일? 백분의 일? 장애인은 스물에 한 명꼴인데 왜 학교에서, 직장에서, 버스와 지하철과 거리에서 장애인을 볼 수 없는 걸까? <디스트릭트 9>처럼 물리적인 격리구역을 만들어 장애인을 가두어둔 것은 아니지만, 실제 장애인들에게 우리 사회는 창살 없는 감옥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생애주기와 관련해 살펴보자. 장애인에게 이 사회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두려운 곳이다. 특히 가난한 가정일수록 더 심각하다. 장애아를 돌보려면 가족 중 누군가 직장을 포기하고 아이를 꼬박 24시간 돌봐야 한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 장애가 심할 경우 어쩔 수 없이 장애인 거주시설에 맡긴다. 장애인은 학창시절도 격리되어 보낸다. 비장애인과 함께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특수반으로 분리되거나, 특수학교에 배정된다. 성인이 되어서는 직장을 가질 수 없거나 터무니없이 낮은 임금을 받는다. 노동을 하고 보수를 받으면, 그나마 받던 사회의 지원이 끊긴다. 장애가 다 ‘나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노동을 통한 수입이 없으니 장애인은 ‘사회가 제공하는 집’에서 겨우 ‘밥만 먹고’ 산다. 문명사회의 기둥인 자본으로부터 그들은 분리당한다.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최종적인 격리다. 장애 인권 문제를 들여다보면 <디스트릭트 9>은 절대 과장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03 더 이상 존엄을 짓밟지 말라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40여 년을 목수로 일하다 심장질환에 걸려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다니엘 블레이크 씨의 이야기다. 그는 질병 수당을 신청하지만, 복잡한 서류·신청 절차 때문에 갖은 수모를 당한다. 그는 컴퓨터 사용 방법도 배워보고 공무원들에게 도움도 청해보지만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 그러자 그는 고용센터 건물 벽에 빨간 스프레이로 글을 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굶어 죽기 전에 질병수당 항고 날짜를 잡아줄 것을 요구한다.”

2017년 2월 15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이자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인 박경석 씨가 사회보장위원회 건물 외벽과 유리창에 빨간 스프레이로 이렇게 썼다. “나, 박경석, 개가 아니라 인간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여러 번 덧칠해서 썼다. 

 

이에 발맞춰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빈곤사회연대 회원들이 사회보장위원회가 있는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 충정로 사옥 앞에서 ‘활동보조 24시간 보장’과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등 사회보장기본법 개정을 요구하며 팻말을 들었다. 모든 팻말에는 그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나, 인현, 나는 하찮고 쓸모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나를 더 이상 모욕하지 마십시오!’, ‘나는 게으름뱅이도 거지도 아닙니다. 내 이름은 최영은입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드러내는 일종의 상징으로 이름을 사용했다.

 

장애인은 존엄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차별 때문에 장애인은 노동의 주체가 될 수 없고, 따라서 사회 또는 가족으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식사나 목욕 같은 사소한 일상을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려면  ‘내 돈’이 아니라 ‘사회의 돈’ 또는 ‘가족의 돈’ 이 꼭 필요하다. 그런데 개인이나 가족은 물론이고 ‘사회의 돈’마저도 불충분하다. 

 

우리 사회는 장애 등급을 철두철미하게 심사(?)해서 최소한의 금액만을 지원한다. 따라서 장애인은 비장애인이 흔히 즐기는 영화 관람 같은 문화·여가생활을 즐기기 어렵다. 돈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문화·여가시설, 식당, 백화점, 쇼핑센터 등을 찾기 어렵다. 흔한 맛집 여행도 불가능하다. 휠체어가 드나들기 어렵고, 겨우 들어갔다고 해도 제대로 앉아서 밥을 먹을 여건이 안 되는 식당이 너무 많다. 또한  지하철이나 버스, 기차나 고속버스조차 편하게 이용할 수 없으니, 비장애인이 당연히 누리고 있는 대부분의 것을 장애인은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찬성VS반대

 

Q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할 수 있나?

 

Yes ​근거01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객관적인 경계는 있다! 

 

‘정상’은 건강하거나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나 상태를 지칭한다. 신체적, 정신적으로 ‘정상’이라고 하면 건강하다는 의미이고 통계학적으로는 ‘평균적’이라는 의미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말은 일상생활에서 폭넓게 사용한다. 혈압이 정상이다, 아니다와 같이 쓰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의 행동이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 ‘정상적인’ 행동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신체건강과 정신건강,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유형 등을 판단할 때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이상적인 상태를 ‘정상’ 혹은 ‘정상적’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정상의 범주에 들 수 없을 때는 비정상으로 분류한다.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객관적인 경계는 분명 있다. 

예를 들어보자. 정신건강의 면에서 보면, 심리적으로 고통을 겪거나 사회 부적응한 행동을 하거나 스스로를 통제하는 힘이 없거나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보일 때 ‘비정상’이라고 말한다. 물론 정상과 비정상을 규정하는 내용은 무엇을 판단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분야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분이 불가능하다거나, 구분하는 것이 의미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만일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할 수 없다면 건강 상태와 질병의 경계도 제대로 확정할 수 없을 것이다. 

 

No 근거01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보편타당한 잣대는 없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기준은 시대에 따라, 지역과 사회에 따라 다르다. 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정상이 아닌지 그 경계 또한 불분명하다. 이는 정상과 비정상을 구별하는 보편타당한 잣대가 없다는 뜻이며, 결국 정상과 비정상이 허구적 개념이라는 얘기다. 

일반적으로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상태’를 정상이라고 본다. 무엇이 보편적이고 이상적인 상태인가? 정신이나 육체적 장애가 없는 것이 이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인가? 그렇다면 장애인은 비정상인가? 동네에 특수학교가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비정상적인’ 사람들이 드나들어서 집값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심리에서 비롯된다.   

정상과 비정상의 잣대는 특정한 목적에 따라 만들어낸 인위적인 기준이다. 엄밀함을 중요시하는 의학 분야에서조차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한다. 보통 실험과 관찰로 얻은 통계에 근거해 ‘정상’의 잣대를 도출하지만, 이러한 통계는 평균을 기점으로 차이를 보여줄 뿐, 어떤 상태가 ‘비정상’이라는 점을 명확히 제시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한 분야의 특출난 재능을 가진 영재를 특수학급에서 교육한다. 평균적이고 일반적이지 않은 재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영재를 비정상으로 보지 않는다. 과학이 아닌 사회학 분야에서 정상과 비정상의 객관적인 경계를 설정하는 것은 이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은 가치판단이 개입된 문제로, 보편타당한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출처]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2018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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