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100이라는 숫자 / 주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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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흐르는 강물처럼] 100이라는 숫자 / 주철환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단군 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 홍익인간 뜻으로 나라 세우니/ 대대손손 훌륭한 인물도 많아’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이 동요의 제목은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다. 음악 채널에서 이를 본 따 ‘레전드 100아티스트’를 선정했는데 이제 얘기하려는 남진, 나훈아도 여기에 이름을 올렸다. 그들의 노랫말 속에도 100이라는 숫자가 들어있다. ‘이대로 영원토록/ 한 백년 살고파요/ 나를 두고 가지를 마오’ 나훈아가 1970년에 취입한 이 노래의 제목은 <가지 마오>다. 경쟁자였던 남진도 1972년에 비슷한 염원을 노래에 담았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 제목은 <님과 함께>다.

사랑하는 사람과 백년을 함께 산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러나 인생의 시간표는 인간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우선 사랑하는 마음이 영원하기 어렵다. 서로 사랑해도 <어느 육십 대 노부부 이야기>에서 보듯 누군가 한 사람은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먼저 가야 하는 게 인생이다. 나훈아는 최근에 발표한 노래 <공(空)>에서 ‘잠시 왔다가는 인생/ 잠시 머물다 갈 세상/ 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이라고 탄식했다. 이런 걸 어디서 가르쳐주나. 노래를 들으면 답이 나온다. ‘살다 보면 알게 돼/ 일러주진 않아도/ 너나 나나 모두 다 어리석다는 것을.’

제목에 숫자 백이 들어간 노래도 있다. 몇 해 전 크게 유행했던 <백세인생>은 저승사자와 문답하는 형식의 노래다. 육십 세에는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 칠십 세에는 ‘할 일이 아직 남아 못 간다’, 팔십 세에는 ‘아직은 쓸 만해서 못 간다’, 십년 단위로 아직, 아직 하더니 구십 세에는 ‘알아서 갈 테니 재촉 말라’ 한다. 마침내 백세가 다가오니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로 응답한다.

좋은 날 좋은 시는 도대체 언제일까. ‘백년을 살아보니’를 쓴 김형석 교수님께 여쭤보려니 왠지 실례일 것 같다. 솔직히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작가는 세상에 몇 분 안 된다. 만약에 ‘백년을 산다면’이나 ‘백년을 살고 싶다면’ 혹은 ‘창문 넘어 도망친 백세 노인’ 같은 소설 장르라면 도전해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백년을 살아보니’를 표지에 붙이려면 엄격한 자격을 갖춰야 한다. 우선 본인이 백년을 건강하게 살아내야 하고, 그 연세 되도록 생각이 가지런해야만 한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에 라디오에서 들었던 유행가 중에 <백만 원이 생긴다면>이라는 노래가 있었다. 김정구와 장세정이 주거니 받거니 듀엣으로 부른 일종의 만요(漫謠)다. ‘만약에 백만 원이 생긴다면은 금비녀 보석 반지 하나 살 테야’ 기록을 살펴보니 1937년 12월에 오케레코드사에서 발매됐다고 한다. 당시 백만 원은 어마어마한 금액일 것이다. 하지만 ‘돈과 함께’보다는 ‘님과 함께’가 아무래도 낫지 싶다. 아무튼 백이라는 숫자는 인간의 욕망을 대변한다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TV에 나온 김형석 교수는 이런 농담을 하셨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도 꽤 오래됐으니 이제는 재혼을 한다 해도 양해해주지 않을까요.” 옛날 같으면 흥미가 덜했을 텐데 나이 들어서는 솔깃한 말씀이 많아서 채널 고정하고 들었다. 책에도 쓰셨지만, 인생의 황금기는 60대부터라는 희망의 고백도 빠트리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정년퇴임 후 받은 질문 중 가장 당황스러운 질문이 “앞으로 어떤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인데, 교수님의 체험적 증언을 들으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내친김에 인터넷에서 김 교수의 강의를 찾아 듣기로 했다. 그날 고른 제목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가>다. 클릭하기 전에 품사 하나씩을 바꿔가며 자문자답을 해봤다. 우선 부사를 바꿔본다. ‘얼마나 사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가’ 사는 날까지 사는 게 정답이다. 형용사를 바꿔본다.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옳은 것인가’ 뉴스를 보면 저마다 내가, 혹은 우리 편이 옳다고 하는데 옳고 그른 건 나중에 세월이 답해줄 테니 나는 지금 내게 어울리는 삶을 살도록 해야겠다. 마지막으로 동사를 바꿔본다.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인가’ 가족에게 폐가 안 되도록 건강관리를 잘해서 오래 앓아눕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해본다.

돌아보니 백 점을 맞아본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백세인생을 논한다는 게 주제넘은 일인 것만 같다. 그나마 내가 행복했던 건 애초에 백 점을 목표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졸음이 몰려온다. 백세인생을 목표로 삼지 말고 내일 아내랑 맛있는 걸 먹어야지 결심하고 컴퓨터를 조용히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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