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手作] 하나의 큰 그림이 될 때까지 / 강호석. 옻칠 공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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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재미난 手作] 하나의 큰 그림이 될 때까지 / 강호석. 옻칠 공예가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아침 8시 30분. 이제는 다 커서 혼자 학교에 가는 첫째에 이어 둘째와 함께 걸어서 초등학교까지 데려다준 다음 내가 작업실에 도착하는 시간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코로나19로 학교에 가는 시간이 들쑥날쑥해지니 작업실에 출근하는 시간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 

그렇게 보낸 10년의 세월. 달라진 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서 유치원, 이제는 학교로 데려다준다는 것뿐, 나는 매일 작업실로 향한다. 옻칠 작업은 매일 꾸준한 작업량이 필요하다. 더욱이 계속해서 작업할 수도 없는데, 건조장과 상온에서 며칠을 말려야 다음 작업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규칙적인 작업 시간을 만들려고 한다. 그 시간을 모아보니 벌써 16년. 무엇을 기대하고 보낸 건 아니라고 할지라도 꽤 긴 시간이다.  

내가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주변에서 자주 물어본다. 딱히 무슨 이야깃거리가 있는 건 아니라서 “그냥”이라고 하고 싶지만(물론 “그냥”이라고 답할 때도 있다) 가끔은 성의 없어 보여서 “밥은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대답한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내가 옻칠을 시작하게 된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옻칠의 블랙이 주는 느낌 그 자체, 가볍지 않은 깊이감과 특유의 중후함이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이런 지극히 평범함과 막연함에서 출발한 작업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옻칠은 옻나무에 상처를 내서 받은 나무 수액이다. 옻나무들의 아픈 생명력 때문일까. 옻칠은 천 년 이상을 간다고 한다. 옻칠은 재료의 물성 때문인지 다루기 어려운 재료임을 작업을 하면서 매번 느낀다. 살아서 움직이듯,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장난꾸러기 같다고 할까. 그래서 같은 작업이라도 결과물은 각기 다르다. 건조장의 온도, 습도, 날씨, 사포로 연마할 때의 힘, 붓질의 속도, 그날의 내 컨디션 등 미세한 요인들이 많은 영향을 미친다. 

사실 지금 하는 작업은 한 작품에 기본 1년 이상이 걸린다. 시간에 대한 효율성, 속도, 자본 등을 중요시하는 현시대에 반하는 세계이다. 노동집약적인 작업이라서 시간이 많이 할애되는데, 더욱이 내 작업은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최소 7번 이상의 옻칠, 그에 따른 칠하기와 연마, 그리고 마지막에도 옻칠 표면에 광을 낸 상태에서 다시 작업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보통은 표면에 광을 내는 것으로 마무리하지만, 나에게는 끝이 곧 새로운 시작이다. 광을 낸 옻칠 표면에 처음 한 번의 칼질에서 시작된 것들은 작품이 마무리되어갈 때쯤이면 하나의 점·선·면이 수백만 번의 그음으로 적층되어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내 작업 방식이다.  

3년 전 시카고에서 열린 아트페어에 출품한 적이 있다. 현지 컬렉터에게 내 작품을 구매한 이유를 물어본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작품에 배어있는 시간의 적층성과 우연성 등을 지닌 작품이 자기 스스로 말하지 않았나 싶다. 작업하면서 배운 일상성, 우연성, 불확실성은 내 삶의 중요한 철학이다. 그래서 너무 많은 것, 너무 먼 미래의 일을 계획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만큼 부담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오늘의 작업을 열심히 하는 일상성 속에서 그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다. 이는 지금의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지치지 않고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이다.

앞으로 내 삶과 작업에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내가 걸어온 길이 하나의 큰 그림이 될 때까지 불확실한 것보다는 자명한 한 가지로 지금의 나를 만들어가고 싶다.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에. 그 자명한 한 가지는 바로 지금 작업실에서 작업에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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