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이 사람] 이 시간을, 내 음악을 묵묵히 / 홍혜란, 성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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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클릭! 이 사람] 이 시간을, 내 음악을 묵묵히 / 홍혜란, 성악가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매일 아침 7시, 5개월인 딸아이의 옹알이 소리가 방안에 자그마하게 울려 퍼진다. 나는 아직 미처 떠지지 않는 두 눈을 비비며 아이의 침대로 다섯 발자국 걸음을 옮긴다. 그러면 그곳에는 나를 보고 세상에서 가장 환하게 웃어주는 하얀 천사의 얼굴이 있다. 그렇게 예쁜 천사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훌쩍 시간이 지나가 버린다. 

그렇게 시간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시계를 보고 흠칫 놀라고 나서야 부랴부랴 일하러 나갈 채비를 한다. 씻고 화장하고 머리를 다듬는 모습을 혹시 딸아이가 볼까 봐 살짝 숨어서 준비한다. 곧 ‘빠이빠이’를 해야 한다는 걸 아이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엄마만의 미안함 때문이다. 그렇게 아직 엄마와의 헤어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딸아이를 두고 나오며 “엄마 빨리 다녀올게!”라는 말로 집을 나선다. 아이가 아니라 내 미안한 마음을 조금은 위로하고자 하는 인사이다.

그렇게 집을 나서는 내 손에는 10년째 늘 악보를 담는 가방과 함께 크고 무거운 검은 가방 하나가 또 들려있다. 바로 딸아이의 맘마를 준비하는 유축 가방이다. 출산 후 육아에 대해 무지했던 나에게 존경하는 한 피아니스트 선생님이 주신 기대치 못한 선물이었다. “앞으로 일 년 동안 혜란 씨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될 거야! 나도 그랬거든!” 그때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와 닿지 않았다. 이렇게 모유로 아이를 키우게 될 것을 상상조차 못 했던 나였기 때문이다. 

항상 이 세상에 부딪힐 수 있는 일들은 용감하게 다 시도해보라고 조언해 주시는 선생님이 모유 수유도 경험해보라며 은근히 푸시하시는 건가 싶은 원망이 살짝 있기도 했다. 그렇게 100% 나의 의지는 아니었더라도 모유 수유를 하기로 하고 딸을 위해 일하는 중간에 잠시 짬을 내서 유축을 한다. 그 순간 아이와 함께하지 못하는 미안함이 또 몰려온다. 그리고 동시에 10살 때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30년이라는 시간을 해왔는데, 현재 노래하는 일에 온전하게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럴 때면 왠지 모를 불안함과 걱정이 앞서서 나 자신을 더 다그친다. 

그제야 나에게 은근히 모유 수유를 푸시(?)하셨던 선생님의 지난 시간이 떠올려진다. 항상 해가 저물고 나서야 피아노 앞에 앉아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밤을 꼴딱 세고 아침이면 다시 아이들에게 돌아가 엄마로 최선을 다하셨던 선생님의 모습이 이제 와 돌이켜보니 안쓰럽기도, 대단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런 선생님의 마음과 선물해주신 검고 큰 가방이 나에게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매일 아침 딸아이의 헤아릴 수 없이 사랑스러운 미소만큼 마음 한구석에 몰려왔던 음악가로서의 불안함, 걱정, 그리고 절박함에 대해 내가 그동안 지켜본 선생님의 모습이 대답해주는 것만 같다. 누군가를 향한 그녀의 한없는 사랑과 희생, 그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음악으로 전해지는 가슴 뭉클한 감동이 나에게 ‘괜찮아, 할 수 있어!’ 하고 나지막이 얘기해주는 듯하다.  

조금은 나아진 마음으로 집으로 향한다. 온종일 같이 있진 못해도 딸의 잠드는 시간만큼은 꼭 함께하고픈 엄마의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길은 항상 마음이 급하다. 거의 뛰다시피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귀여운 딸아이가 팔다리로 허공을 차며 나를 반겨준다.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깔깔거리는 소리를 내며 입을 벌려 웃어 주기도 한다. 씻긴 후 기도해주고 침대에 눕히고 나면 아이는 자신을 향한 나의 미안한 마음을 알고 있는 듯이, 마치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따뜻한 미소로 잠이 든다. 그리고 나는 그 천사의 미소와 함께 앞으로 더욱더 풍요롭고 아름다워질 내 음악을 꿈꾸며 악보를 집어 들고 연습실로 향한다. 20여 년 전 나와 같은 이 시간을 묵묵히 이겨냈을 내 존경하는 선생님처럼. 

 

사진 제공. 스톰프 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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