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 있는 에세이] 선물 / 신선미,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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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그림이 있는 에세이] 선물 / 신선미, 화가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첫 그림책을 출간하고 한동안 본업으로 돌아가 전시에 집중했다. 다음 책에 대한 고민은 접어두고 휴식기도 가졌다. 그러는 사이, 몇 번의 명절이 지났다. 그동안 친정은 몇 번 갔을까? 생각해보니 멀어서 차 막힌다는 핑계로 자주 가지 못했다. 결국 명절이 다 지나고 남편이 휴가를 받고 나서야 찾아뵙곤 했다. 

엄마는 내가 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뭘 해 먹여야 할지, 반찬은 뭘 싸줘야 할지 들뜬 고민을 하신다. 나도 친정에 가면 막내딸로 돌아간다. 살짝 투정 부리기도, 입이 짧은 아이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밤에는 남편과 아들을 한방에 밀어 넣고 엄마 방에서 잔다. 이때가 아니면 엄마 옆에 누울 일이 없으니. 아직도 엄마의 살 냄새가 좋아서 팔에 입을 맞대고 잠이 든다. 마흔 넘어 주책이라 흉볼 일이지만, 어린 시절 외가에서 자란 나는 엄마 품을 많이 그리워했다. 부모님이 장사로 바쁘셔서 보다 못한 외할머니께서 나를 몇 년간 키워주셨다. 그때의 기억은 전부 엄마를 기다린 기억 뿐. 양옥집 마루에 앉아 대문만 바라보던 기억이 상처가 됐던 것인지 커서도 엄마만 보면 어리광을 부린다. 가끔 밤늦게까지 엄마와 옛날이야기를 하는데, 엄마는 해마다 조금씩 옛 기억을 잊어버리시는 듯하다. 

현재 엄마는 조금 편찮으신 아빠를 돌보고 계신다. 아빠는 치매 초기라고 하는데, 지극히 정상처럼 보이다가도 가끔 딴소리를 하신다. 그런 아빠를 돌보며 생긴 스트레스는 우울증이 되었고, 결국 약을 드셔야만 했다. 그 약은 오래 복용하면 눈이 침침해지고 몸에 힘도 빠져 생각이 흐려진다고 약을 끊으려고 하신다. 우울증이 치매로 발전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겁도 난다. 나중에 진짜로 다 잊어버리면 어떡하지? 잠든 엄마의 머리카락을 쓸었다. 엄마…. 

다음 책은 엄마를 위한 그림책을 만들어야지. 엄마의 기억이 다 지워지기 전에. 마음이 급해진 나는 한동안 미뤄진 에스키스를 수정해 스케치에 들어갔다. 다음 전시와 동시에 그림책에 들어갈 주인공은 엄마와 나로 정했다. 전시 제목은 ‘나는 당신이 그립습니다’로, 책 제목은 아무래도 출판사와 의논해야 하니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완성된 스케치를 사진으로 찍어 엄마에게 보냈는데 좋아하신다. 이번 그림은 엄마의 모습이 그려져서인지 더 신기해하셨다. 나중에는 스케치 더미도 만들어 직접 보여드렸다. 출판사에서도 마음에 들어 했다. 이 기쁜 소식을 엄마에게 전했다. “엄마, 조금만 기다리세요. 완성되면 엄마한테 먼저 선물할게요!” 들려오는 대답은 기대보다 별로 요란하진 않았다. 그냥 부스럭부스럭 소리만 날 뿐.

그런데 채색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늘 쓰던 종이도 단종되어 애를 먹였다. 다행히 작년에 사둔 종이를 발견해 겨우 아교반수*를 했다. 급한 마음에 손도 떨렸다. 결국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자 몸에 무리가 왔나 보다. 정기검진을 받아온 가슴에 물혹이 커져 조직검사를 해야 했다. 큰 수술이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불안했다. 거기다 갑상선 기능저하까지…. 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안 되었다. 더 힘들어하실 테니. 마감을 위해 수술 직전까지 밤샘 작업을 했지만, 미완성인 채로 수술실에 들어갔다. 그날 저녁 수술 후 집에 도착한 나는 일주일을 앓았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그림을 촬영한 이미지를 제날짜에 출판사로 넘겼다. ‘수고했어, 수고했어’ 가슴을 쓸어내리며 나 자신을 칭찬했다. 

그렇게 4년 만에 두 번째 그림책이 나왔고, 책을 받아들고 나서야 찔끔 눈물이 났다. 엄마는 알까? 책을 내는 동안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품에 꼭 끌어안은 책을 내려놓고 첫 장을 펼쳤다. 손이 약간 떨렸다. 그리고 붓펜을 들어 적으려다 잠시 멈칫했다. 엄마만 그려서 아빠가 서운하시려나? 나는 다시 붓펜을 들고 세로로 짧은 글을 적어 내려갔다. ‘사랑하는 부모님께 이 책을 바칩니다. 2020년 5월 8일 막내딸 선미가’

 

1980년 울산 출생, 울산대 동양화과를 거쳐 홍익대 대학원 동양화과 졸업. 2006년부터 국내외 다수의 전시에서 ‘개미요정’ 시리즈를 발표. 저서로는 그림책 <한밤중 개미 요정><개미 요정의 선물>(글·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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