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만남, 상상을 현실로 / 전용덕, 애니메이터·촬영감독

내 캐시 : 0 캐시

총 결제 캐시 : 0 캐시

사용후 캐시 : 0 캐시

기사
문화 예술
[만남] 만남, 상상을 현실로 / 전용덕, 애니메이터·촬영감독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판다가 쿵푸를 하고, 슈렉이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세계, 작은 트롤이 팝을 노래하는 세상, 원시인들이 가족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 등을 만드는 나는 적어도 하루의 3분의 1 이상을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공간에서 보낸다. 관객이 90분간 극장에서 만나는 129,600장의 이미지를 만드는 내 직업은 애니메이션 촬영감독이다. 쉽게 말하면 영화 촬영감독과 같은 일이지만, 주로 컴퓨터 내의 가상공간에서 감독과 함께 각 장면에 들어갈 캐릭터를 촬영한다. 지난 20년간 촬영을 책임진 작품은 ‘드림웍스’의 <쿵푸팬더>(2008), <슈렉>(2010), <크루드 패밀리>(2013), <트롤스>(2016) 등이며 현재는 내년에 개봉할 <비보 Vivo>라는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촬영 중이다. 2016년부터는 미국 아카데미협회 애니메이션 부문 이사로 활동 중이고, 칼아츠(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서 시네마토그라피를 강의하고 있다. 

처음부터 내 직업이 애니메이션 촬영감독이었던 것은 아니다. 1997년까지 금강기획이라는 광고 회사에서 광고 디자이너로 나름 즐거운 직장 생활을 했었는데, 미국으로 온 계기는 함께 미술 공부를 했던 친한 친구 때문이었다. 미국은 영화에서나 접하는 나라로만 여겨왔던 내게 한날한시에 떠나자고 제안한 친구는 안타깝게도 비자 면접에서 떨어졌고, 친구 따라 미국에 오려던 내 계획은 미국행 비행기에 홀로 몸을 싣는 결과를 낳았다. 다행히 몇 년 후 그 친구도 미국에 왔고, 미술 대신 신학 공부를 한 뒤 목사님이 되었다.

1997년 스물일곱, 생각만큼 어렵지도 그렇다고 쉽지도 않은 늦깎이 유학생의 미국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어학연수 시절의 목표는 단 하나. 대학원 졸업 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월트디즈니’에 들어가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는 것. 하지만 2005년 여름이 되어서야 디즈니사에서 오퍼를 받았고, 잠시 고민한 나는 <쿵푸팬더> 촬영감독에 마음의 저울이 기울어져 드림웍스에 남기로 했으니, 일단 목표는 그때 이룬 셈이다.

아버지는 회계사, 어머니는 원더 우먼, 형도 회계사, 동생은 증권맨인 걸 보면 가족 중 나는 참 별종이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던 내 미래는 일찌감치 부모님께서 정해주셨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고, 내게 중요한 해인 2003년이 되었다. 처음으로 제작에 참여한 장편 애니메이션이 극장 개봉을 했고 첫아이가 태어났으며 보름 만에 회사가 부도나서 실직을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3주 만에 드림웍스에서 보낸 이메일을 우연히 스팸메일 폴더에서 찾아내 순식간에 전화 면접을 보고 촬영팀 아티스트로 제안을 받아 그해 여름에 취직한 경이로운 해였던 것이다. 그동안 드림웍스의 문을 여러 번 두드렸으니 얼마나 기뻤던지…. 

다시 세월이 흘러 2017년, 동료들의 만류를 뒤로한 채 나는 회사를 나왔다. 14년간 5편의 애니메이션 촬영을 총지휘했고 회사에는 친구들로 가득했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목마름은 여기서 해결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꿈의 공장 드림웍스에서의 생활은 젖과 꿀이 흐르는 신들의 정원처럼 완벽했지만, 크리에이터로서의 삶은 고인 물과 같았다. 내 실력이 좋아서 영화가 흥행하는지, 원래 영화가 좋아서 내가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사는 것보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나의 스토리텔링 실력도 확인해보고 싶어서 퇴사를 결심했다.  

마침 두세 곳에서 연락이 왔고, 그중 뉴욕에 있는 ‘20세기 폭스’에서 제의한 공동 감독직을 수락했다. 나의 최종 목표는 아카데미에서 최고 애니메이션상을 받는 최초의 한국인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의 결과는 참담했다. 세상이 내게 커브볼을 던진 것. 그해 여름 디즈니사가 20세기 폭스사를 합병하면서 준비 중인 작품들의 미래가 불투명해져서 당분간 새로운 작품을 맡기기보다는 촬영팀 조언자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미안한 마음으로 사양하고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소니픽쳐스’에서 제작하는 뮤지컬 애니메이션의 촬영감독을 맡았다. 돌고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것 같지만 마음은 홀가분했다. 최선을 다했고 세상이 던진 커브볼을 내 힘으로 받아 쳐냈기 때문에. 

돌아보면 나는 전형적인 돌격형이다. 잘 될 거라 믿고 항상 모든 만남과 일에 최선을 다하며 미래만 보고 달린다. 그래서인지 별로 후회도 아쉬움도 없다. 개운함과 소중한 경험이 될 만남만이 남아 있을 뿐. 살면서 내게 벌어진 일들에 원망한 적도 없다. 군 시절 왼쪽 눈을 심하게 다쳐 실명에 가까이 됐지만, 그 눈 덕에 남들보다 세상을 더 정확히 보려고 노력했다. 긍정적인 사고는 행동을 지배하고 자신감 넘치는 활동 방식은 미래를 바꾼다고 믿는다. 먼저 나 자신을 신뢰하고 자랑스러워하며 성과를 토닥여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세상도 내게 좋은 만남과 기회를 준다. 지난 2008년 드림웍스의 제프리 카젠버그 사장님이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아티스트라는 단어는 용덕 너를 두고 한 말이다.” 나는 그전에도 지금도 아티스트이다. 나 자신을 넘어서려는 소리 없는 처절한 몸부림이 가끔 사람들의 눈에 보일 뿐. 

 

*1971년 출생. 서울시립대 산업디자인학과 학사, 美 스쿨오브비주얼아트 대학원 컴퓨터아트 석사. 드림웍스 촬영감독(2003~2017) 역임. 現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이사,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 레이아웃 감독, 칼아츠 캐릭터 애니메이션과 교수. 

관련 잡지
월간에세이 Essay
정기구독가[12개월]    60,000원 50,000 (17% 할인)
발행사 : 월간에세이  |  한글 (한국) 월간 (연12회)  | 
주 제 : 문화 예술
발행일 : 매월 23일
발행사의 기사


관련 분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