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스토리] 한 편의 대하드라마 같은 / 이동춘,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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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아날로그 스토리] 한 편의 대하드라마 같은 / 이동춘, 사진작가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어릴 적 할아버지는 나를 품에 안고 동화책을 읽어 주거나 옛날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때 그 시절에 들었던 이야기들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시간이 늘 그립고 행복했었다는 기억이다. 그리고 난 많이 성장했고 이젠 나이도 제법 들었다. 

어느 날 안동을 방문했다. 안동에서 그때 그 시절 들었던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되었다. 검제마을에 자리한 학봉종택을 방문했다. 며칠 전부터 이번 길제에 대한 소문이 무성했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봤을 때, 30년에 한 번 지낸다는 길제에 대한 소문에 이끌려 설레는 마음으로 길제(吉祭) 봉행을 촬영하려 방문한 것이다. 

길제(吉祭)는 14대 김시인 종손이 돌아가시고 3년 상을 마치기 위해 봉행하는 행사이다. 15대 종손, 종부 취임식인 셈이다. 삼년상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장례 후 집으로 돌아와 반혼제라고 하는 초우(初虞) 제사를 시작으로 재우(再虞), 삼우(三虞), 졸곡(卒哭), 부제(祔祭), 소상(小祥), 대상(大祥), 담제(禫祭), 후 길제(吉祭)로 이어진다. 학봉 종손의 계보를 잇는 15대 김종길 종손이 새 종손이 된다는 의미로 고유(告由)하는 제사이다.

먼저 사당 안 감실의 신주를 사랑방으로 옮겨져 개제주를 한다. 개제주(改題主)는 14대 종손이 봉사손으로 모시던 신주가 15대 종손이 봉사손이 되어 모신다는 의미로 신주를 깨끗이 닦아 주며 봉사손의 이름을 14대에서 15대로 고쳐 적는 일부터 시작된다. 이는 엄숙하게 진행되는데, 사당에 들어가 출주 축문을 읽고 신주가 ‘문충고가(文忠古家)’라는 현판이 붙은 사랑방으로 옮겨지게 된다. 사랑방 안에 학봉선생 신주를 제일 왼쪽으로 모시고 5대조 4대조 3대조 2대조 부모님 신주가 순서대로 놓이고 소임을 맡은 유사들이 온종일 신주를 깨끗이 닦고 신주 분명 위에 잔글씨까지 새로 적는 개제주를 한다. 모든 절차를 마치면 신주는 다시 사당 안으로 들어간다. 

다음날, 본격적인 길제를 봉행하는데 전국에서 2,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길제봉행에 참석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제사상은 일곱 상이 차려진다. 불천위 학봉선생인 고위와 비위상이 각각 차려지고, 5대조 4대조 3대조 2대조 부모님 신주가 순서대로 놓인다. 김종길 종손과 소임을 맡은 유사들이 사당에 들어가 출주 축문을 읽고 신주가 모두 종가 마당에 차려진 제사상 위에 자리를 잡고 놓인다. 초헌관인 15대 종길 종손이 잘 차려진 제사상에 각 위마다 축문을 읽고 차례로 두 번씩 절을 하고 제주(祭酒)를 올린다. 그 뒤를 이어 아헌관인 15대 종부가 각 위마다 제사상에 네 번씩 절을 한다. 옆에서 받드는 딸들은 힘이 들어 중간에 손을 바꿔서 했지만, 종부는 각 위마다 제사상에 모두 4배를 드리고 제주를 올렸다.

5월 2일이였지만 벌써 정오가 되어 가면서 날씨는 덥기까지 했다. 종헌관으로 각 배향 위의 친정 손들이 상마다 절을 드리고 제주를 올렸다. 길사가 끝나고 음복을 마친 뒤 5대 조부모의 위패는 조매를 위해 그 어른의 묘소로 향했다. 그 묘소에 땅을 파고 신주를 묻고 축문을 읽어 내려간다. 종손의 눈에는 눈물이 맺힌다. 이러한 모습들이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1박 2일간의 대하드라마 같은 제례의식이었기 때문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순간, 엄청난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져가는 제례의식을 기록한다는 생각에 숙연해졌다. 어릴 적 나의 할아버지는 나에게 내가 누구인지 보학(족보 그 자체를 연구하는 학문)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다. 흐릿한 기억이었지만. 

학봉종택 대문에는 ‘학봉선생구택’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다. 학봉은 경상우도초유사로 관군과 의병을 총지휘하여 임진왜란 삼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다. 계속되는 전투와 병든 백성의 구휼에 진력하던 중 진주공관에서 순국하셨다. 퇴계 선생의 적전고제로서 학통전수의 징표인 병명을 받았으며 후학들은 조선성리학의 정맥으로 면면히 계승되어 구한말 독립운동으로 이어진다. 11대 종손 서산 김홍락은 의병장으로 활약하였고, 정부에서 훈장을 받은 제자만 60여 명을 배출했다. 직계 후손 중에도 11명이나 훈장을 받았다.

이런 이야기가 산재한 안동의 종가문화에 매료되어 사진을 찍은 세월이 15년이다. 어릴 적 할아버지께 들었던 보학이야기가 나를 안동으로 이끌었던 건 아닌지…. 나는 오늘도 이곳 안동 종가 문화를 사진에 담는 데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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