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이 사람] “이륙준비 완료” / 배서희, 파일럿·예비역 육군 소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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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클릭! 이 사람] “이륙준비 완료” / 배서희, 파일럿·예비역 육군 소령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조종사의 요청으로 관제사의 승인이 떨어지면 헬기는 활주로를 이륙한다. 내가 UH-1H 헬기 조종사가 된 건 우연이었다. 정말 우연이 운명을 결정하는 것일까. 2005년에 육군 소위로 임관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여군 최초 참모총장이 되겠다는 포부로 육군 보병으로 임관했다. 그 후 신병교육대 소대장으로 임무 수행 중에 중위로 진급했는데, 어느 날 육본 보직 장교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배 소위! 네가 갈 자리가 두 군데 있다. 보병학교 구대장과 35특공대대 특수임무중대장 자리야! 보병학교는 훈육 장교니까 편하게 후학을 양성하는 곳이고, 35특공대대를 가면 많이 힘들 거다. 결정은 네가 해라.” 그 말씀에 “왜 저한테 35특공대대 자리에 갈 수 있다고 하시는 겁니까?” 여쭤보니 태권도 유단자만 가능한 자리인데, 내가 보병이면서 태권도 3단 유단자라서 후보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모두 만류했다. 그곳은 독거미 부대로 전군에서 유일한 특공부대이고, 특히 그 안에서 여군 부사관으로 이뤄진 중대에 장교로서 중대장으로 가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육체적으로 엄청난 훈련이 기다리고 있는,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하고 내가 군에 들어온 목적은 진짜 군 임무를 하는 곳을 원했기에 35특공대대의 신선한 매력에 이끌려 선택하게 되었다. 

그곳에서의 첫 시작은 역시 모든 이들의 관심사인 ‘과연 새로 온 특임중대장이 잘 적응해서 임무 수행을 할 것인가’에 맞춰있었다. 대대장님 역시 여군 중대원들과 문제없이 잘 지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나는 너무 재미있었다. 매일 있는 특공무술 연습과 타이어 끌고 1.5km 달리기, 11m 헬기레펠, 권총 사격 등 모든 훈련이 흥미로웠다. 특히 연습 후 항공기에 탑승해 줄 하나에 의지한 채 뛰어내리는 헬기레펠을 했을 때 처음으로 육군에도 헬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30사단 신병교육대 시절, 전임 여군 소대장이 육군 항공병과로 전과했다는 소식은 멀리서 전해져서 육군 항공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실제로 헬기에 탑승한 건 처음이었다. 그렇게 분기마다 탑승하면서 도대체 어떤 군인들이 헬기를 조종할까,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연히 내가 헬기 조종사가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35특공대대 특임중대장 시절 장기 복무 심의가 들어갔다. 내가 선택한 직책이지만, 기존에 근무 중이던 여군 동기에게 지휘 추천이 밀리면서 장기 복무 심의에서 탈락했다. 이때는 여군 보병을 더는 뽑지 않겠다는 정책으로 타 병과로 전과시키는 것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 당시 40명을 뽑는 자리였지만, 내가 지원할 때는 단 10명밖에 뽑지 않았다. 장기 복무는 보통 50%를 선발하는데, 정책상 단 30%만 선발하게 되면서 아쉽게도 4등으로 장기 복무에 비선이 되어 육군 최초 참모총장이 되겠다는 포부는 군 생활 3년 차에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군인이 천직이라 여겨온 내가 하루아침에 당장 올해 전역 후 민간인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35특공대대장님께서 “배 중위! 육군 항공병과로 전과해라! 거기로 가면 장기는 자동으로 된다”라고 하셨다. 순간 의아했지만, 또 다른 기회라고 여기며 시험 준비를 했다. 다행히 필기, 면접, 신체검사를 한 번에 합격해 입교했다. 그런데 워낙 갑자기 지원하다 보니 8개월 동안의 육군항공학교 기간에 의무 복무 기간 3년이 끝나 강제 전역 처리가 되고 나서 재입대가 된 해프닝도 있었지만, 무사히 수료하고 헬기 조종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것이 헬기와 나의 첫 만남이다. 헬기는 내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가는 대로 따라올 뿐. 우리 인생도 생각하고 행동하는 대로 따라오는 것이 아닐까. 돌아보면 헬기 조종사가 되겠다고 꿈꾼 적도 없었는데, 군 생활 14년 중 12년을 헬기 조종사로 살았으니 인생은 계획대로 펼쳐진다는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지 새삼 알게 되었다.  

현재 나는 1인 기업가로서의 새로운 만남을 경험 중이다. 인생의 비행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자유롭게 인생을 조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을 하며. 헬기 조종사를 꿈꾸는 많은 이들에게 정보를 전하기 위해 유튜브 채널도 개설했다. 앞으로 원대한 목표보다 하루하루 해야 할 일을 하며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삶을 살고 싶다. 새로운 만남을 통해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기대하며 내 삶을 조종해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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