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돌아가신 7년 후 다시 만난 아버지 / 오준,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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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
[만남] 돌아가신 7년 후 다시 만난 아버지 / 오준,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이사장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7년이 지난 2005년 여름, 나는 유엔 주재 차석대사로 발령을 받고 출국 준비 중이었다. 어느 날 저녁 모임 후 귀가했는데, 모르는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친이 오우홍 선생님이시죠?”라고 대화를 시작하며, 아버지를 독립유공자로 추서하고자 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 그 당시에는 요즘처럼 보이스 피싱이 기승을 부릴 때는 아니었지만, 예상치 못한 제안에 의심이 갔다. 하지만 잘 들어 보니 아버지의 고향인 여수시에서 일하시는 분이 맞고 설사 착오일지 몰라도 속임수는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곧 출국 예정임을 설명하고 동생을 소개해 드렸다. 이듬해 3.1절, 아버지에게 건국훈장이 추서되었고 다른 곳에 있던 묘지도 현충원으로 이장되었다. 

아버지는 평소에 말씀이 많은 분은 아니었지만, 장남인 나와는 그래도 가끔 대화를 하셨다. 비교적 자주 하시는 말씀 중에는 일제 강점기의 감옥생활 이야기가 있었다. 손톱 밑에 대나무를 넣는 고문 행위 등 어린 아들이 듣기에 소름 끼치는 내용이라 나는 왜 그런 이야기를 자꾸 하시나 불만스럽기도 했다. 한번은 왜 감옥에 가셨는지 여쭸더니 “우리나라를 강제로 점령한 일본 사람들 나가라고 만세를 불렀더니”라고 간단히 답하셨다. 감옥에서 일어난 일이 자꾸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인상을 주셨다. 

아버지가 독립유공자로 추서되면서 나는 비로소 그의 젊은 시절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일을 알게 되었다. 나와 동생들은 여수시의 조사 결과와 연로하신 친척들의 증언을 꿰맞춰 아버지가 한 번도 우리에게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알아냈다. 

아버지는 고향인 여수에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이에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1934년 일제가 한반도 내 자생적 노조를 탄압한 대표적 사건인 소위 ‘여수 적색노조사건’의 주모자 중 하나로 검거된 것이다. ‘적색노조’라는 말은 당사자들이 그렇게 쓴 것은 아니고 일제 수사기관이 붙인 명칭이다. 핵심 청년조직원이었던 선친은 광주형무소(現 광주교도소)에서 2년 반을 복역하였다. 출소 후 열악한 수형생활로 얻은 폐결핵을 치료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철도 노동자로 일하며 대학에서 영어를 배웠다. 

귀국 후 해방이 되자 영어를 할 수 있는 아버지는 미군정에서 일하다가 1948년 정부 수립 시 외무부 창설 요원으로 참여, 제1공화국 내내 미국 LA 영사 등 외교관으로 일했다. 아버지는 늘 영어를 잘해야 세계에 나가 다른 나라들과 경쟁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셨는데, 후일 나 자신이 외교관이 되는 데도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가 일제 강점기 노조 사건 이야기를 묻어 버리고자 하신 것은 이해가 된다. 본인도 공직생활을 했고 3명의 아들 중 2명이 공무원이 되었는데, 좌익 성향의 항일운동 경력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사실 민주화 이후 뒤늦게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은 분들 중 그런 경우가 꽤 있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도 언젠가는 그런 활동이 인정받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가끔 아버지의 침묵에 대해 생각해 본다. 아버지가 최소한 젊었을 때는 사회주의자였을까, 하고. 이념에 대해 말씀하시는 걸 들은 적은 없지만, 내가 어린 시절 처음으로 ‘공산주의’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아버지에게 여쭤본 기억은 생생하다. 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더니, “우리가 시계를 보고 시간을 알아야 하는데, 모든 사람이 손목시계를 하나씩 차는 대신에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마다 벽시계를 하나씩 걸어 놓아서 누구나 시간을 알 수 있게 하자는 것이 공산주의”라고 설명하셨다. 나중에 학교에 가서 알게 된 공산주의의 정의와는 거리가 멀어서 왜 그렇게 설명을 하셨을까 생각나곤 했지만, 한 번도 다시 여쭤본 적은 없다.

이제 내가 그 당시 아버지의 나이가 되었다.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아버지, 젊을 때 하신 일은 잘하셨어요. 저희 모두 자랑스러워요. 하지만, 시계에 대한 생각은 저도 모르겠어요. 사람들은 시간을 알기 위해서만 시계를 보는 게 아니고,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시계를 소유하려는 게 아닐까요. 저도 살아 보니까 그게 인간인 것 같아요.”      

* 서울대학교 불문학 학사, 런던대학교 정치경제대학원 비교정치학 석사, 스탠퍼드대학교 국제정책학 석사.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교수. UN대사, UN 경제사회이사회 의장 역임. 現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 이사장,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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