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들과의 온전한 시간을 위해 모든 것을 중단하고 떠났던 2018년 8월, 그 여름의 선택은.
당시 저는 하루에도 여러 번 생방송 시사 패널로 참여하면서 연구소 소장으로, 상담사로, 강사로 일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저 일이 잘 풀리는 것에 감사했고, 제 커리어는 정점을 향해 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같은 시기, 제 중2 아들이 사춘기를 혹독하게 겪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말로만 듣던 중2의 미운 짓은 다 했는데, 저는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생방송 중에 머리가 핑 돌고 눈앞이 아찔해져서 병원에 들러 링거를 맞으며 마음을 다스리기도 했습니다.
결국 ‘커리어냐 아들이냐’의 갈림길에 설 수밖에 없었고 고민 끝에 아들 돌보기를 선택했습니다. 모든 일을 중단하고 친정엄마와 언니 가족이 사는 미국으로 떠나 2년 반을 온종일,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들과 붙어 지냈습니다. 다행히 아들은 다시 순하고 다정다감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학교생활도 즐겁게 잘했습니다. 저도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올해 초, 갑작스레 일에 복귀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예상보다 1년 일찍 복귀한 것입니다. 일을 쉬면서 ‘다시는 나를 찾아주는 곳이 없으면 어쩌지’라던가 ‘경력이 단절되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면 어쩌지’하고 걱정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상담사라는 제 직업은 나이가 드는 것에 후했고, 학부모로 온전히 사는 시간이 많은 내담자들을 이해하는데 자양분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 아이의 회복과 성장을 지켜보며 상담사로서 진정한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일을 재개하자마자 조금도 예상 못 한 난관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마음은 일터로 나갈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입니다. 아침이면 몸이 천근만근이고, 의욕도 없고, 관절은 무릎, 허리, 손가락 등 번갈아가며 아팠습니다. 요즘 말로 ‘헐’이라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왔습니다. 코로나19로 1년간 실내에서만 지내다 보니 움직이지 않는 삶에 몸이 적응되어 그런 것 같기도 했고, 2년 넘게 수험생 학부모로 몰두해서 사느라 사회의 속도와 복잡성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고, 중년이 되었으니 갱년기 증상이 시작된 것일 수 있겠다 싶었는데, 아무튼 아침마다 힘들고 당황스러웠습니다.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해야 할까.’ 이른 아침에 교회에 가서 예배와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고, 운동도 다시 하기로 했습니다. 익숙한 운동인 휘트니스와 요가원을 주로 갔는데, 문제는 코로나19가 끝나지 않은 상황인데도 학원마다 사람들이 너무 북적거린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이 적고 조용해 거리두기를 할 수 있는 곳은 플라잉 요가원 한 군데뿐이었는데, 플라잉 요가는 사진으로 볼 때마다 나와는 너무 다른 세상에 있는 것으로 꿈조차 꾼 적이 없었습니다. 20~30대 연예인들이나 운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젊은 사람들이 할 법한 서커스 수준의 운동이었습니다.
소극적인 마음으로 플라잉 요가에 대해 검색을 해봤습니다. 자세 교정에 탁월하고, 림프 순환에 좋고, 소화력이 촉진되고, 하지정맥에 특효 운동이고…. 현실은 어림도 없는데 글마다 플라잉 요가는 나를 위해 만들어진 운동인 듯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면 플라잉 요가를 시작한 지 3주 차가 됩니다. 제가 절벽에서 떨어지기 직전의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면서 매달리고 있는 포즈는 코치님이 ‘팅커벨 포즈’라 부르는 자세이고, 고문당하는 사람처럼 긴장해서 거꾸로 매달린 포즈는 ‘멍키 포즈’입니다. 운동 시간마다 긴장해서 힘이 들고, ‘어느 세월에 저분들처럼 될까, 언젠가 되기는 할까?’ 좌절감도 맛봅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런 도전을 통해 조금씩 다시 제 삶의 2라운드에 안착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자신감도 조금씩 되찾고 있는 듯합니다. 땀범벅이 되어 해먹에서 내려와 주저앉아있으면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내게 말을 겁니다. ‘그래. 상희야. 멋지다. 인생은 도전이지. 용기 있는 사람이 못 할 것은 없어.’ 네, 저는 지금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용기 내어 도전하는 사람에게 삶은 다시 문을 열어준다고 믿고 있습니다. 다시 미래를 꿈꾸며 설렐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봄날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