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스토리] 꽃, 공감과 위로를 전달하는 / 이정은 플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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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아날로그 스토리] 꽃, 공감과 위로를 전달하는 / 이정은 플로리스트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일본에 살던 20대, 프랑스에 관심도 동경도 없었던 나는 단 한 번의 여행으로 파리의 플로리스트가 되었다. 그저 조금 더 넓은 세상이 보고 싶어 “1년만 다녀올게요” 하고 떠났고, 워킹 홀리데이 비자에서 취업 비자로 갱신한 뒤, 쭉 그곳에 그렇게 눌러 살 줄 알았다. 언어와 이(異)문화를 경험하는 것을 좋아했으니 해외에, 가깝지만 멀다고 하는 그 일본에서 말이다. 그러던 중 도쿄 고탄다에 위치한 플라워숍에서 취미로 꽃을 배우기 시작했고, 친구와 떠난 파리 여행길에서 인생이 바뀌었다. 

그 당시, 무언가에 홀리듯이 일본으로 귀국하고 3개월 만에 유학 준비를 마치고 떠났다. 파리의 플라워숍 인턴을 시작으로 피베르디에르(Piverdiere) 플로리스트 과정 ‘CAP: certificat d'aptitude professionnelle’을 거쳐서 플로리스트 고급 과정인 ‘BP:Brevet professionnel’를 수료한 뒤 두 개의 플로리스트 국가 자격증을 취득했다. 삼십대에 다시 학생이 되었던 삶은 나를 채우는 일로 가득했다. 도전과 실패, 또 성공을 반복하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더 채울 수 있고 비울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꽃은 내게, 온전하게 행복한 시공간을 내어주었다. 

프랑스는 우리나라보다 유서가 깊다는 일본보다도 꽃 역사가 깊은 곳이었으며 도매와 소매가 분리된 시스템, 꽃을 접하는 일상이 당연시되어 꽃을 배우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플로리스트를 요리사와 헤어 디자이너, 소믈리에처럼 전문가, 장인으로 대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저 예쁘게 만들어 포장하고 판매하는 게 다가 아닌 자연에서 나오는 소재 하나하나를 디자인에 접목하고 자연 그대로를 표현해내는 자연스러움을 중시하고, 꽃은 그대로가 아름다운 것이므로 우리 플로리스트들은 그 얼굴들의 특징을 잘 살려 조화를 이루게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을 강조했기에 이를 기반으로 한 철학과 기본을 다지는 시간들이 행복했다. 

내가 점장으로 일하고 있는 에펠탑 근처의 16구 샵에서는 호텔과 레스토랑에 꽃을 납품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도 서서히 자리 잡고 있는 ‘위클리 플라워’라고 불리는 정기 구독은 일찍이 프랑스에서 사용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매주 다양하고 신선한 계절 꽃을 회사, 호텔, 레스토랑, 그리고 가정집으로 배달하는데, 파리지앵들은 우리의 신선한 꽃이 특별이 더 마음에 들던 날이면 방문이나 전화로, 또는 메시지로 감사의 표현을 전달하는 데 거침이 없다. 샵을 지나가다가도 일부러 방문해서 윈도우 장식의 아름다움을 “축하한다”고 표현한다. 아름다운 것을 실현하는 아티스트의 재능과 완성을 축하한다는 의미로 말이다.

현재 사입을 포함해 매장 관리, 고객 관리, SNS와 온라인 마케팅까지 담당하고 있으니 개인 숍을 운영하는 것처럼 사업 마인드이지만, 플로리스트로서의 철학을 늘 고려한다. 단순히 예쁜 것을 조합해서 판매하는 것이 아닌, 살아있는 소재가 주는 에너지를 잘 전달하는 사람, 그리고 그와 얽힌 오브제를 잘 발견하여 삶을 조금 더 윤택하고 특별하게 만드는 공감과 위로를 전달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이와 더불어 최근에 출간한 책을 통해 도전을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좋은 공감과 위로를 전달할 때 역으로 에너지를 얻는 경험을 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나 자신이 다른 이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그릇이 큰 사람으로 조금씩 더 성장해 가고 싶다.

프랑스는 자연과 함께 더불어 가는 삶을 지향한다. 오래된 것들의 가치를 소중히 이어온 그들의 가치관과 닮아있겠지만, 꽃과 식물의 색감과 생동감을 놓치지 않고 일상에서 녹여내고 있다. 즉, 모던함과 올드한 클래식이 공존하는 곳이다.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느리게 흘러가는 시공간을 사랑하는 이들이 바로 프랑스인들이다. 

파리, 이 낭만적인 도시에서 꼭 가봐야 할 명소에는 늘 공원이 하나씩은 들어간다. 그만큼 유명하고 아름다운 공원들이 시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서울의 6분의 1정도 규모의 이 작은 도시에 만연한 식물들은 얼마만큼 그들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고 있는지 말해주는 듯하다. 이처럼 나는 플로리스트가 단순히 꽃을 만지는 사람이 아닌, 삶의 활력을 여러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이 도시에서 매일, 매 순간 배우고 있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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