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手作] 조금씩 천천히 / 유아리 도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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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재미난 手作] 조금씩 천천히 / 유아리 도예가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화가가 꿈이었다. 꿈을 위해 미대 입시를 준비했는데, 삶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어쩌다 보니 도예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생이 되면 예쁘게 단장하고 다닐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아니었다. 먼지투성이 작업실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흙을 주물거리며 재료가 굳기 전에 완성해야 집에 갈 수 있는 도예학과에서 대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생각해 본 적 없는 분야를 전공하기는 쉽지 않았다. 힘겹게 만든 작품은 가마에 넣기도 전에 갈라지거나 망치기 일쑤였다. 어린 마음에 그만두고 싶었고 현실에 만족 못 한 채 다른 분야를 찾으며 졸업을 위한 작업을 했다. 그리고 4년 만에 새로운 꿈이 완성되었다. 바로 도예 작가였다. 어렵게 작업을 시작했지만 조금씩 성장했고 졸업할 때쯤 도예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졸업 후에는 현실에 맞는 일을 찾아야 했다. 취업도 해보고 다른 진로를 위해 준비도 했지만 작업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세월만 보냈다. 그래도 공방에서 취미처럼 작업은 했고 몇 년 후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대학원에 입학했다. 작업하며 행복했고 결혼도 하게 되면서 꿈을 다 이룬 듯했다. 졸업 후 작가 생활을 꿈꾸고 안정된 가정도 생겨 걱정은 끝났다고 여겼다. 하지만 졸업과 동시에 나는 작가 대신 엄마가 되었다. 그토록 원해서 대학원에 갔고 작가를 꿈꿨는데 시작도 전에 엄마가 된다니…. 나름 공예를 하던 사람이라 체력이 좋다고 자부했지만 육아에서는 달랐다. 분명 육아를 하고 있어도 아무것도 안 한다는 죄책감이 들었고, 자유시간이 생기면 조금씩 작업을 했다. ‘무엇을 위해 작업을 하는 것인가?’ 가끔 성과 없는 작업에 눈물이 날 때도 많았다. 하지만 꿋꿋하게 버텼고 마음에 드는 작업이 나올 때까지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힘든 나에게 조금의 보상이랄까? 꾸준히 해온 작업으로 도자 공모전에서 많은 상을 받았다. 작품성을 인정받아 초대전으로 개인전과 단체전도 여러 번 했고, 대학 강의도 4년 6개월 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공모한 도자기 상품 개발에 선정되어 지원금으로 상품을 개발하는 기회도 얻었다. 작품이 우수공예품으로 지정되어 왕성한 활동과 해외전시의 기회도 얻었다. 그러나 점점 가족들에게 미안해졌다. 넘쳐나는 이력은 추억 없는 삶과 바꿔야만 했다. 이를 알게 됐을 때 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고, 가정과 작업의 균형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물론 그만큼 절실함과 아련함 속에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에서 인생을 다시 배우고 있다. 그동안 미뤄둔 취미생활과 매일 하는 산책은 무궁무진한 영감과 아이디어를 주고, 작업량은 줄었어도 조금씩 꾸준히 하고 있다.

대학원 졸업 심사 작품을 만들면서 디자인한 ‘도자 보석함’에 집중하고 있다. 기하학 형태로 다양하게 접합하거나 변형하는 방법으로 조형미와 실용성을 더했다. 보석처럼 값진 것을 간직하는 용도와 보관도 쉽고 장식하기도 좋은 보석함을 만들고 싶었고, 도자기 그릇처럼 친근해지기를 바랐다. 뚜껑이 있는 도자기를 만들려고 시행착오를 거치고 탄생한 것이 지금의 도자 보석함이다. 기존에는 물레 성형을 한 원형이 대부분이었지만 다양한 시도로 섬세함을 필요로 하는 각진 형태를 만들고 가마에서 변형이 거의 없도록 어렵게 소성하는 것이 희소성이 있다고 믿는다. 함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뚜껑 문양으로 꽃이나 클로버를 만들 수 있어 사용자가 블록 놀이를 하듯 즐겁게 사용할 수 있다. 

각 작품에 도안을 직접 그려 넣고 색 안료를 여러 번 덧발라 채색하는데, 뚜껑 하나를 만드는 것만 8시간이 걸릴 만큼 작업이 더디다. 다양한 색감을 얻기 위해 저화도 물감을 사용해 고온에서 자기를 만들기에 높은 불량률을 감수해야 한다. 저온에서 적합하게 생산된 물감은 고온에서 끓거나 떨어져 나가는 게 대부분이다. 따라서 실험을 통해 고온에서 버틸 수 있는 색상과 나만의 레시피로 혼합한 색상을 사용한다. 이렇게 채색한 기물은 재벌 소성을 한 뒤 금으로 장식하고 삼벌 소성을 하는 등 지난한 과정을 거친다. 조각 한 개라도 불량이거나 약간의 색 번짐, 붓질의 흔적이 생기면 나머지를 버려야 해서 비생산적이다. 가마에서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인고의 시간은 헛수고가 되니 허탈하기도 하다. 그러나 불이 의도한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도예가의 숙명이다. 나의 노력과 뜻대로 되지 않는 도예 작업은 우리의 인생과 닮았다.  

코로나로 제한된 일상을 사는 요즘,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와 추억을 만들고 잊고 지낸 나 자신을 돌보는 중이다. 여태껏 어떤 목적도 목표도 없이 멈추지 않고 달리기만 했다. 이제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현재를 즐기며 이야기와 감성이 담긴 작업을 하고 싶다. 지금껏 그랬듯이 꾸준히 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배웠고 믿는다. 불안한 현재는 없다. 설레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뿐.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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