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 이경숙 (에세이스트작가회의 이사 - 부산지회)

작품 : 무제

ARTIST  ∙ 이 경 숙 (개인전 3회)
2017 현대미술 작은 그림 축전 운영위원(인사아트 갤러리)
2017 제33회 대한민국 전통미술대전 서양화 심사위원
2018 대한민국 희망동행 아트쇼(인사동 라메르 갤러리)
2019 앙데팡당전(피카디리 문화의 전당)
2019 부산 회화제(부산 문화회관)
2021 디지털  영상제(서울 홍대앞 전광판 영상제)/ 서울 아트스퀘어 명예의 전당 등재

현재 부산미술협회 회원 / 대한민국 미술전람회 초대작가 

빛이 숨고 어둠이 열리니 기열 차게 돌던 문명의 발명품들이 잠을 잔다.

그제야 고요의 세계가 있었음을 알게 되지. 늘 있었지만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들리고, 있었으나 보이지 않았던 소소한 일상이 둥둥 떠오른다. 기계마저 지쳐 잠이 드니 내 몸은 또 어떠하랴. 몸은 누웠으나 정신은 너무나 멀쩡하다.

‘에라, 고요를 찾아 나가 버리자.’

찬란한 태양빛이 없는 곳엔 은은한 달빛이 존재하고 우렁찬 삶의 기합 소리 잦아든 곳에 회복의 생명 소리 분주하다.

노곤해진 아낙의 얼굴 간질이듯 매화 나뭇가지가 달항아리 어루만지려 살랑거린다. 달항아리 위에 앉아 먼 산을 보던 까치는 지나가는 고양이에 깜짝 놀라고 정작 몰래 지나가려던 고양이는 푸드덕 까치의 날개 짓에 흠칫하며 ‘아이, 깜짝이야.’

밤인듯하나 어둠이 없다. 잔뜩 채워진 듯하나 비어있다. 고독한듯하나 혼자가 아닌 장면이다. 인간 삶의 상흔들을 가리려 무겁게 덧입혀진 물감의 두께가 묵직하다. 고요와 거친 파동 사이를 수없이 넘나드는 번민을 덮으려 했는지 모른다. 마음 한가운데 뻥 뚫린 구멍을, 그것을 메우려 정 중앙에 백자 달항아리 가져다 놓았다. 그곳은 우리의 심장이 있을 자리겠지. 심장 박동이 미세하게 들려온다. 작가에겐 소망하는 것들의 현상이 달을 닮은 항아리와 영원토록 묵묵히 기다려 줄 저 탑의 모습인가보다.

누군가가 나에게 묻는다면, 저 탑을 무엇이라 대답하게 될까? 여백의 무한대를 담은 백자 달항아리에 나는… 아무것도 채우지 말까 한다. 심지어는 아무것도 담지 않겠다는 생각마저도.

[ 글. 정경화 ]

[출처] 에세이스트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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