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은의 etc] 세상을 혼자 걸어갈 수 있는 / 이소은 가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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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이소은의 etc] 세상을 혼자 걸어갈 수 있는 / 이소은 가수·변호사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지난주에 오랜만에 가족 모임이 있었다. 엄마 아빠, 언니와 나, 이렇게 네 식구가 똘똘 뭉쳐서 알콩달콩 살았던 삶에 어느새 형부와 남편, 아이들이 추가되어 대가족이 되었다. 가족의 구성원 수에 비례하여 일이 많아지는 만큼 웃음과 기쁨의 순간도 많아졌다. 코로나19로 인해 모이기 힘들었던 지난 1년의 그리움과 밀린 사연들 때문에 오랜만에 만나는 시간이 더더욱 반갑고 흡족한 마음이었다. 

요리를 잘하고 즐기는 남편과 형부가 있지만, 무조건 엄마가 해주는 집밥을 좋아하는 딸들과 손자들을 위해 엄마가 많은 시간을 주방에서 보내셨다. 요리가 다 완성되고 식사를 하기 위해 모두 식탁에 앉았는데도 여전히 주방에서 계속 바쁘게 움직이는 엄마를 보고 “엄마 빨리 와서 앉아!”를 반복해서 말하는 언니와 나는 고마움과 미안함이 섞인 눈빛을 교환했다.  겨우 앉아서 다 같이 식사를 하는데 18개월 된 딸이 밥을 먹다가 기침을 했다. 내가 물을 갖다 주고 여기저기에 어질러진 음식물을 닦아주려고 손수건을 가지러 주방에 갔는데, 엄마의 말 한 마디가 들렸다. 

“너부터 먹어. 엄마가 편해야 해. 애는 나중에 챙겨.” 

웃음이 나왔다. 

‘누가 할 소리. 엄마야말로.’

아이를 양육하는 데에도 문화가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속한 사회의 문화뿐만 아니라 가족 문화, 그리고 부모 개개인의 문화 역시 아이들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다. 미국에서 일하면서 문화 차이가 도전이 된 적이 꽤 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도 문화의 차이를 느낀다. 더 좋고 나쁘고의 가치 판단보다 각자에게 익숙한 것이나 친숙한 것을 유지하고 답습하는 것이 가족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아이가 익숙해질 환경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바로 전에 아빠의 유학으로 미국에 왔다. 웨스트버지니아주에서 모건타운(Morgantown)이라는 시골 마을에 살았다. 80년대에도 조기 교육을 하는 가정은 있었겠지만,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알파벳조차 몰랐다. 입학 전날 밤, 엄마는 아이들이 화장실에 가야 하는 것을 대비해서 “Can I go wash my hands?”라는 말 한마디를 가르쳐 주셨다. 화장실을 가도 되냐는 질문 보다는 손을 씻어도 되냐고 둘러서 표현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신 것이다. 나와 언니는 그 말을 되뇌며 첫 등교를 했지만 마침 화장실이 교실 바로 앞에 있어서 써먹을 일이 없었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며 우리끼리 깔깔 웃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낳아보니, 그 상황의 우스꽝스러움보다는 영어 한마디 못하는 어린 딸들을 학교에 보내야 했던 엄마 아빠는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을까, 생각하지 못했던 기억들의 이면이 궁금해지는 요즘이다.   

팬데믹으로 지난 1년 넘게 집에서만 지내던 아기를 최근 유아원에 보냈다. 등원 첫날 나에게 안겨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세상 떠나갈 듯 우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고 돌아서서 걸어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기도 안전한 울타리 너머의 세상을 경험해야 해! 이건 아이를 위해서 좋은 선택이야! 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집에 오긴 했지만, 사실 아이를 위해서라기보다는 내가 일을 하려고, 나의 이기심에 의한 선택임을 자책했다.   

몇 년 전에 읽은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Prepare the child for the road, not the road for the child.” 

그 당시에는 아무 생각 없이 읽었지만 요즘 들어 자주 떠올린다. 제설기 부모, 혹은 헬리콥터 부모라는 말이 나오는 요즘, 부모가 아이들 앞에 놓인 장애를 깨끗하게 치워서 걸림돌 없이 미끄러지듯 날아가게 하려는 훈육 트렌드를 우려하는 말이다. 보호해주기보다는 앞으로 펼쳐질 세상을 혼자 걸어갈 수 있는 강한 아이로 자랄 수 있게 지켜봐 주는 엄마가 될 수 있는 내 역량을 키우고 싶다. 어쩌면 우리 엄마가 해준 “엄마가 편해야 해, 애는 나중에 챙겨”도 같은 선상에 있지 않을까 싶다.

아이가 유아원에 있는 그 시간의 무게가 느껴지는 만큼, 우리 작은 식구 개개인에게는 새로운 도전의 시간임은 분명하다. 어린 딸이 독립의 근육을 키우는 동안 초짜 엄마 아빠인 우리도 부모가 되어가는 길에서 매진 중이다. 아이 덕분에 시간의 소중함을 절감하며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갈 문화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진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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