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읽다] 어느 시간여행자의 아버지, <어바웃 타임 About Time> / 최재훈,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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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영화를 읽다] 어느 시간여행자의 아버지, <어바웃 타임 About Time> / 최재훈, 영화평론가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행복했던 기억은 단단한 덩어리가 되어 묵직하게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다. 시간이 흘러 뭉툭해지는 순간도 있지만 마음에 풍랑이 와도 단단한 그 덩이는 닻이 되어 결국 나를 떠내려가지 않게 잡아준다. 특히 가족이라는 이름이 그림자가 아닌 빛으로 기억된다면 그들과 함께 나누었던 시간은 내 두 발이 땅 위에 단단하게 뿌리내리게 만든다.

이제 막 성인이 된 팀(도널 글리슨)은 아버지(빌 나이)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대대로 이 가문의 남자들은 성년이 되면 과거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단 제한이 있다. 자신이 경험한 과거로만 돌아갈 수 있다. 로맨틱 코미디라 생각하기 쉽지만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어바웃 타임>은 사랑의 순간을 함께 나누는, 너무나 특별한 가족의 삶을 통해 우리 모두의 삶과 시간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화다. 

<러브 액츄얼리>(2003)로 데뷔한 리처드 커티스 감독은 <어바웃 타임>을 통해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의 손을 관객에게 쥐어주고 팀의 선택을 함께 따라 걷게 한다. 묘하게도 팀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온화하고 곧은 부모, 형제 속에서 바르게 자란 때문인지 그는 자신의 능력을 오직 바르고 옳은 일에만 사용한다.    

팀의 경험을 대입해 보면 같은 일을 되풀이해도 삶 전체가 달라지진 않는다. 하지만 오지랖을 부려 과거를 바꿔버리면 정말 내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특히 아이가 태어난 이전 시간으로 돌아가 버리면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아이가 달라진다. 그래서 팀의 아버지도 아주 먼 과거로는 돌아가지 못했다. 

<어바웃 타임>은 그간 우리가 보아왔던 가족영화와 그 결이 많이 다르다. 팽팽하게 당겨진 끝에 묶인, 날을 세워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가족 대신 아들의 미래를 위해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부모를 배치한다. 영화는 메리와 팀의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그들 삶의 중심에 적이 아닌 온전한 내 편인 가족을 동그랗게 그리고 촘촘히 심어둔다.

사실은 시간 여행자의 능력이 아니라 시간 여행자의 아버지가 사실은 부러웠다. 나 자신을 세상 가장 소중한 사랑이라 불러주는 아버지를 가진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우리 모두가 바라는 판타지가 아닌가 싶다. 영화는 줄곧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단단한 결속을 중심으로, 내 삶을 놓더라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아이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다. 결국 팀은 새롭게 태어날 아이를 위해 과거가 아닌 미래를, 미지의 시간을 선택한다. 

팀의 아버지도 자식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놓았듯이 팀도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이제 시간을 시간으로 온전히 두려고 한다. 팀은 현재의 시간, 현재의 행복이 돌이킬 수 있는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보다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흘려보낼 시간은 순리대로 보내고, 온전히 시간을 미지의 것으로 남겨두기로 한다. 

사실 살면서 길을 잃은 것처럼 막막한 순간들이 참 많다. 노련하고 현명한 인생의 가이드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끝도 길도 모르는 막연한 삶의 해답을 누군가 알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과거로 돌아가서 시간을 돌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미래는 가보지 않은 길이라 그 결말을 알 수가 없다. 시간은 사고처럼 다가오고, 겨우 찾은 빛은 길을 충분히 비치지 않는 것 같다. <어바웃 타임>은 힘들겠지만, 그렇게 모르는 채로 살아가도 괜찮다고 우리를 토닥여준다.   

팀의 아버지를 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시간에서는 사라졌지만 기억으로 남았다. 아버지는 하늘을 올려다보면 만나게 되는 대자연이 된 것 같다. 마음이 외로울 땐 바람이 되어 감싸주고, 힘이 필요할 땐 파도가 되어 찰싹 때려주면서 시간을 재촉하거나 다그치지 않고 너의 마음에 따르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진심을 충분히 들여다볼 수 있는 축복 같은 시간을 가지라고 한다. 너는 나와 다르게….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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