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만남, 음악이 이끄는 곳으로 / 박유신, 첼리스트·예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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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만남] 만남, 음악이 이끄는 곳으로 / 박유신, 첼리스트·예술 감독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어릴 적 내 모습을 생각해보면 별다른 큰 꿈이 없었던 시골 소녀였다. 부모님의 권유로 이것저것 배우면 뭐든 잘할 때까지 붙잡고 있는 근성 정도가 내 유일한 장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중에서도 클래식 음악은 붙잡고 있어도 그다지 재미없는 편에 가까웠다는 사실이 돌이켜보면 흥미로운 지점이다. 다른 음악가들의 성장 과정처럼 부모님께서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셔서 자연스럽게 접했다거나 집안에 음악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어머니께서 잘 다루는 악기 하나 있으면 좋겠다며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배울 수 있게 해주셨다. 어찌 보면 그런 내게 첼로가 당첨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우연한 만남처럼.  

당시에는 그저 평범하고 큰 의미는 없었던 첼로가 지금은 인생의 가장 소중한 벗이 되었다. 정확히는 예고생을 지나 스무 살 때부터였다. 그저 첼로를 배우는 학생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싶었던 십 대 때의 마음이 스무 살이 되어서 더 특별히 다가왔다. 자연스럽게 애정을 기울여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잘하는 연주자들의 연주를 매일같이 찾아 들어보고, 일 년의 콩쿠르 스케줄을 혼자 찾아보고 도전하고…. 이처럼 진정으로 첼로를 통해 좋은 음악을 연주하고 싶은 마음이 나를 지배했다. 뒤늦게 첼로와의 만남으로 사랑에 빠진 것이다. 

그 시절에는 정보력도 부족했고, 어떻게 해야 좋은 음악가가 되는 길인지 열정만 가득했을 뿐 서툴렀던 것 같다. 나 혼자 콩쿠르 경연장에 가면 첼로를 매고 두리번거리다가 의자를 찾아서 내 자리를 만들었다. 주변에는 또래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거나 학부모들로 가득했다. 그런 풍경에 괜히 어깨가 움츠러들고 어색해한 내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콩쿠르가 끝나고 결과지가 벽에 붙으면 멀리서 지켜보다가 한참 후 사람들이 빠지면 조용히 다가갔다. 이윽고 벽에 붙은 내 이름을 발견하고 내심 너무 신이 났지만, 아무 기색도 없이 조용히 나오던 내 뒷모습…. 

남들보다 첼로를 늦게 시작한 나는 늦게 사랑에 빠진 만큼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며 매일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보다 더 혹독한 분을 만난 것 또한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바로 독일 유학 시절 은사님과의 만남이다. 유학을 시작한 첫해는 독일 역사상 가장 더운 해라고 했다. 학교는 에어컨 하나 없이 한증막에 들어온 것 같았고, 그때는 내가 선생님을 만나고 함께 준비 중인 첫 국제 콩쿠르가 열리기 두어 달 전이었다. 레슨이 시작되기도 전에 선생님의 셔츠는 다 젖어 있었고, 나 역시 벌겋게 얼굴이 익은 상태였다. 

그렇게 시작된 레슨이 세 시간을 넘어가니 선생님의 말수도 점점 줄어들었다. 몸도 마음도 지치고 ‘이렇게까지 하셔야 했나?’ 말도 안 되는 소심한 원망이 섞여 눈물이 났다. 그런데 선생님은 조용히 나갔다가 들어오시면서 내 연주를 한 번 더 듣고 오케이를 해주셨다. 그렇게 선생님과 매일 한 달을 보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내가 스승이 되어보니 선생님을 향한 존경심이 더욱 샘솟는다. 그분의 공으로 매번 나가는 콩쿠르에서 운 좋게 좋은 성적을 받았고, 음악이 내게 주는 힘이 얼마나 강한지 깨닫게 되었다. 

독일에서의 시간은 온전히 첼로와 나의 치열한 전쟁 같은 시간이었다. 음악은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인데, 그 시절에는 어떻게 하면 좋은 연주, 좋은 음악을 연주할 지에 사로잡혀 심신을 혹사한 괴로운 시기였다. 그래도 그 시간을 다 견디고 이겨낼 수 있었던 힘은 음악에 있었다. 과정이 혹독할수록 무대에서 음악이 주는 위로는 평소 행복감을 잘 느끼지 못하는 내게 온몸으로 행복을 느끼게 해주었다. 참 소중하고 감사한 존재이다. 20대의 그 뜨거운 시간을 지나 30대가 되어서는 나 자신에게 조금 더 여유를 주고 음악에도 여유롭게 다가가기 위해 방향을 잡으려고 한다. 사실 이 방법이 생각만큼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습관이 무섭다고 조금이라도 악기를 놓고 있으면 그 시간이 여전히 불안하게 다가온다. 주변에서는 병적이라고 하지만, 이것도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의 일환이지 않을까.  

요즘은 악기를 잡고 있는 시간만큼 펜과 노트를 잡고 있는 시간이 늘었다. 감사히도 2개의 페스티벌에서 예술 감독직을 맡게 되었는데, 1년의 준비과정이 걸리는 프로젝트이다. 페스티벌을 운영한 후로는 해가 바뀌는 시간의 기준이 페스티벌에 맞춰져 있다. 어릴 적 막연히 그려왔던 ‘내가 만든 페스티벌’이 탄생하고 올해 3회째를 맞이했는데, 자식처럼 함께 성장하는 기분이 들어 즐겁다. 또한 포항에서 평범하고 소박한 꿈을 꾼 소녀가 이곳에서 탄생하는 첫 클래식 음악제의 예술 감독으로서 내 고향과 클래식을 알리기 위해 정성을 쏟을 수 있어서 감격스럽다. 10년 전에는 지금의 내가 이러한 많은 일을 하고 있을 줄 상상하지도 못했다. 10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지금은 확신할 수 없지만 음악이 이끄는 곳으로, 새로운 음악과의 만남을 기다리며 시골 소녀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경희대 음대 수석 졸업, 독일 드레스덴 국립음대 석사과정 만점 졸업, 동 대학원 최고연주자과정 졸업. 브람스 국제 콩쿠르 2위 및 특별상(2015), 드레스덴 국립음대 실내악 콩쿠르 1위(2017), 야나체크 국제 콩쿠르 2위, 안톤 루빈슈타인 국제 콩쿠르 2위(2018) 수상. 現 포항국제음악제 예술 감독.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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