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의 숲을 거닐다] 글과 그림. 그리고 그 속 안의 ‘나’ / 황지언 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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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명화의 숲을 거닐다] 글과 그림. 그리고 그 속 안의 ‘나’ / 황지언 미술칼럼니스트·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여기 초상화 네 점이 있다. 그리고 그림들 속엔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보인다. 고생이라고는 하나도 모르고 자란 듯한 젊은 귀공자, 개그맨처럼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콧수염 난 청년, 멋지고 화려한 옷을 입은 귀족, 그리고 힘든 일을 하는 하인처럼 고생이 드러난 얼굴의 노인까지. 그림 속 모델들은 무척 개성이 넘치는데, 이 그림들 속엔 반전이 있다. 네 점의 초상화이지만 놀랍게도 모델은 한 사람이다. 이 그림들을 그린 화가는 렘브란트. 모델은 바로 화가 자신이다.

자신을 그린 그림을 자화상이라고 한다. 자화상은 일반적인 초상화와는 다르다. 글로 치자면 자서전, 혹은 일기나 에세이와도 닮았다. 자신을 바라보고 이를 표현한다. 그래서 자화상은 화가의 내면과 자의식이 담겨 있는 고백의 장이다. 그래서 화가의 자화상을 보는 것은 그 화가를 가장 잘 알게 되는 방법 중 하나이다. 렘브란트는 기나긴 미술사 속에서도 전무후무할 정도로 자화상을 많이 그린 화가다. 일단 유화로 그려진 것만도 알려진 것이 수십 점이 넘어가는데, 에칭과 소묘까지 합하면 백여 점이 훌쩍 넘어간다. 도대체 그는 어째서 이렇게 자화상을 많이 그렸을까?

렘브란트의 젊었을 때 자화상을 그린 이유는 바로 그의 그림 연습이 목적이었다. 자화상을 그리면 모델료가 따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시간적으로도 매우 여유롭게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나이 23세에 그려진 1629년의 자화상(그림 1)은 일반적인 인물화와는 다르게 얼굴의 사선에서 빛이 오고 있어 얼굴 절반이 보이지 않는 특이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후에 ‘빛의 화가’라고 불리게 되는 렘브란트의 회화적 기법의 초기 실험작이다. 그리고 자신을 그리며 빛을 실험한 렘브란트는 1632년부터 약 10여 년간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이후 화가로서 대성공을 이룬 렘브란트는 부유한 귀족이자 아름다운 여성 사스키아와 결혼을 한다. 그는 커다란 저택을 사고, 그림 연구라는 명목으로 모자와 옷 같은 여러 가지 고급 소품들을 사들이며 호화로운 삶을 즐겼다. 그래서 이 시기의 자화상들은 마치 자랑하듯이 귀족처럼 무척 멋지게 그려졌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두 딸이 태어난 지 한 달도 못 되어 사망하고, 모친도 사망, 그리고 사랑하는 부인 사스키아마저 세상을 떠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의 인기도 추락하여 엄청난 재정 악화를 겪게 된다. 이러한 일들이 큰 충격이 되었을까? 그는 약 8년간 자화상을 그리지 않게 된다.

그리고 다시금 렘브란트가 자화상을 그리게 된 것은 많은 인생의 굴곡을 겪고 난 후였다. 지금까지의 화려함은 모두 사라지고 검소하고 꾸밈없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젊었을 적의 자신감 넘치고 멋진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초라한 행색과 주름진 얼굴의 자신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고통이 가중되자 렘브란트의 예술 세계는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는 평을 듣게 되었다. 특히 1662년의 자화상(그림 3)은 걸작으로 유명하다. 언제나 돈과 생계 걱정이 끊이질 않았던 험난한 인생 말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렘브란트가 마치 체념한 듯 혹은 해탈한 듯 자신의 인생을 한 번의 웃음으로 표현한 소이부답(笑而不答)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일 것이다. 

렘브란트가 자화상을 그린 이유. 생각해 보면 자화상을 그리는 것이 인생 성찰의 도구였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이야 몰라도 렘브란트가 살던 시기의 화가는 대부분 주문을 받아야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자화상은 상품으로서 판매 가치가 없는 그림이었다. 그래서 자화상은 누가 시켜서 억지로 그린 그림이 없다. 주문자의 주문대로 그려야 하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신이 진정으로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는 것이 바로 자화상이다. 그 속에서 렘브란트는 자신의 내면과 외면을 표현하려는 욕구를 담아냈다.

렘브란트는 자신을 표현하기를 좋아한 화가였다. 그가 자화상을 통해 자신을 남기는 것처럼 우리도 이렇게 글을 쓰면서 자신을 남기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글 속에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남을지 걱정하며 글을 쓴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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