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자국] 처음의 눈부시던 순간 / 박서연,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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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첫발자국] 처음의 눈부시던 순간 / 박서연, 뮤지션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어린 날 내 꿈은 참 순수했다. 소위 음악천재라고 불리는 몇몇 사람들처럼 노래를 배우지 않고도 유명해지겠다는 성공 신화를 그렸었다. 나의 이상한 고집은 음악학원을 멀리하게 했고, 매일 1시간 이상은 노래 연습을 하겠다는 귀여운 다짐으로 이어졌다. 연습 장소는 부모님의 차 안이었다. 적당한 방음 기능을 갖춘 그 훌륭한 연습실에서 나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나갔다. 오디션을 보기 시작했던 것은 14살부터다. 열정이었는지 겁이 없었던 건지 혼자 서울에 올라가기를 서슴지 않았고 기획사와 방송사 이곳저곳을 열심히 찾아다녔다. 꾸준히 얼굴을 비추면 재능을 알아봐 줄 것이라는 꽤나 당당한 생각으로 특정 오디션에 매주 참가하기도 했다. 합격이 코앞이라고 느껴지던 때도 있었다. 고등학교 축제에서 노래했던 영상이 SNS에서 조명되어 유명 기획사들의 러브콜을 받았던 때였다. 하지만 희망은 늘 빛을 잃고 말았다. 무심한 세상 속에서 기대는 점점 사라지고 좌절이 익숙해지던 즈음 자연히 꿈을 포기하게 되었다. 나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가.

그렇게 애써 가수의 꿈을 잊어가던 어느 날, 두 번 다시 없을 일이 일어났다.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으로 누군가 내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 더 이상 실망하고 싶지 않아 거절도 했었으나 이번에는 분명히 행운이었다. 그날 이후로 감동적인 일들은 계속되었다. 연습 생활의 시작부터 떨리던 첫 스튜디오 녹음과 ‘신인 케이팝 뮤지션’으로 대중들에게 나를 처음 소개하던 순간. 2019년 생일을 가장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던 데뷔곡 ‘희망’까지. 모든 처음들의 화려한 설렘과 넘치는 에너지는 다시 생각해 봐도 대단히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음악을 정식으로 시작한 지 어느덧 4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오랜 시간 바라고 꿈꿔왔던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5곡의 음원을 발매하면서도 여러 경연 대회에 나가 성공과 실패의 경험들을 쌓았고 나를 알리기 위한 활동과 무대들도 놓치지 않았다. 지금은 첫 자작곡인 6번째 음원 발매를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음악을 할 수 있게 되었음에, 그 시작에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한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과정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복에 겨운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쯤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음악에 있어 나의 시작은 내 몸을 직접 부딪쳐 현실의 벽을 깨닫는 성숙의 출발이기도 했다. 많은 경우 시작하는 시점에 큰 꿈을 꾸고 근거 없는 자존심과 자신감을 갖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해야 할 현실이 얼마나 거대한지 내 욕심이 얼마나 과했는지 점점 더 잘 알게 된다. 반복되는 슬픈 깨달음 속에서 내가 현실에 맞춰 작아지고 다듬어지면 비로소 성숙이라는 것이 태어난다. 외로움을 견디며 연습해야 했던 시간들, 내 음악의 주인이 내가 되지 못하게 만드는 평가의 순간들. 그 안에서 넘어진 나를 애써 일으키며 수많은 날을 나약함과 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이상과는 너무나도 달랐고 나는 생각보다 더 많이 ‘별거 아닌 존재’였다. 아픈 사실들은 나를 한없는 밑바닥으로 자꾸만 끌어당겼다. 음악을 처음 꿈꾸고 시작하던 뜨거운 열정과 기억들은 그럴 때마다 자취를 감췄고 종말에는 뿌옇게 흐려졌다. 

목소리 하나만으로 빌보드 무대를 가득 채우는 여성 솔로 아티스트를 목표했던 나였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고 호기롭게 꿈꿨던 시절, 내 하얀 도화지는 거듭 그리고 지워지기를 반복하면서 이제는 조금 때가 묻었다. 그러므로 나에게 시작은 쉽지 않은 일이고, 그러므로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나의 마음은 여전하기에, 꿈을 간직하는 것조차 순탄치 않게 하는 모든 현실을 인내하고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언젠가 저 높은 벽이 허물어지는 날이 올 것을 기다리며 묵묵히 나의 길을 가겠다. 앞으로의 시간을 건강히 살아내기 위해 결과에 상관없이 시작 그 자체를 존경하고 처음의 눈부시던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겠다. 매일이 새로운 시작이다. 가끔은 하찮게 느껴지는 1분 1초라도 순간순간 새로이 살아진다는 점에서 모두가 시작이다. 그렇게 끝없는 시작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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