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읽다 _ 병든 바닷속에 묻혀있던 보물 _ 강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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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
영화를 읽다 _ 병든 바닷속에 묻혀있던 보물 _ 강해인
  •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영화를 읽다-1

 

병든 바닷속에 묻혀있던 보물

 

강해인, 영화평론가

 

망가진 관계를 회복하는 건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새로운 관계가 서로를 믿어 보겠다는 의지 아래서 형성된다면, 망가진 관계는 서로를 향한 믿음이 붕괴했을 때 일어난다. 누군가는 한 번의 실수라 말하며 관계를 회복하려 하겠지만, 한 번의 실망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박수를 받던 이들이 한순간에 손가락질을 받는 순간, 더불어 공동체를 향한 믿음이 무너지는 사건을 목격하면서 우리가 이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와 믿음에 관해 생각하게 된다.

바닷가 마을 군천의 해녀들은 돈독한 관계 속에 평화롭게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화학공장의 등장으로 바다는 병들고, 해산물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게 되면서 행복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이때 물불 가리지 않는 춘자(김혜수)는 친구이자 해녀들의 리더인 진숙(염정아)에게 밀수업에 뛰어들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다시 찾은 안정도 잠시, 불시에 닥친 해양 경찰의 검문으로 해녀들은 모두 체포되고, 설상가상으로 진숙은 아버지와 동생을 잃는다. 그런데 이날 춘자만은 체포되지 않았고, 경찰에게 밀수를 제보했다는 소문만 남긴 채 군천에서 종적을 감춘다.

, 나 모르냐?”

<밀수>에서 군천 땅을 다시 밟은 춘자가 진숙을 향해 뱉는 말이다. 동료 해녀들이 어려운 시간을 보낼 때 연락 한번 없던 그녀가 갑자기 등장했을 때 반겨주는 해녀는 없었다. 그때의 사건으로 해녀들의 삶이 황폐해진 지금, 순수의 시대를 꺼내 자신의 마음을 증명하려는 건 순진한 발상이었다. 바다와 해녀의 삶 모두 화학공장의 배설물 탓에 오염되고 병든 그 시점에 말이다.

바다의 시원함을 만끽할 수 있는 이 영화의 무대가 오염되었다는 건 재미있는 설정이다. 국가가 허가한 화학 공장은 바다를 망가뜨렸고, 오염된 바다는 해녀들의 삶을 시들게 했다. 벼랑 끝에 내몰린 해녀들은 밀수에 뛰어들며 국가 시스템을 오작동하게 한다. 이 꼬리 물기, 악순환 속에 가장 큰 이득을 챙기는 게 부패한 경찰이라는 건 비릿한 웃음이 나오게 한다. <밀수>는 병든 세상을 헤엄치는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였고, 이곳은 가장 타락한 자가 가장 잘 사는 아이러니한 세계다. 미쳐버린 세상을 정화할 수 없다면 더 미친 자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까.

1970년대 오염된 공권력과 비열한 건달들의 폭력 앞에서 진숙을 비롯한 해녀들은 억압받고 억울한 삶을 살고 있었다. <밀수>는 이들이 똘똘 뭉쳐 불합리한 세상에 당당히 맞서는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리고 해녀들은 끝내 승리하고야 만다. 그들이 가장 자유로웠고 행복했던 바다에서 말이다. ‘액션 키드로 대중에게 각인된 류승완 감독은 <밀수>의 수중 액션을 언급하며 중력의 제한에서 벗어나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액션을 담을 수 있어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물은 중력을 거스르고 액션을 펼칠 수 있는 무대였고, 이야기 내에선 약자였던 소시민들이 폭력 앞에 대등하게 맞서며 힘의 구도를 전복시키는 공간으로 활약했다.

그래서 진숙과 춘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진숙은 춘자와 함께 공공의 적에 맞서며 그녀에게 가졌던 오해를 하나씩 풀어간다. 그리고 군천의 바다에 묻혀있던 비밀을 캐는 데 성공하며 친구이자 가족이었던 춘자를 되찾는다. 결국 <밀수>에서 진숙과 춘자가 바다 밑에서 건져 올린 진짜 보물은 진실과 서로를 향한 믿음이었고, 그 보상은 관계의 회복이었다. 이렇게 <밀수>는 비릿한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하고 추구해야 할 것은 서로를 향한 믿음이라 말하며 퇴장한다. 뻔한 메시지처럼 보이지만, 이런 믿음과 관계를 회복하는 서사를 볼 수 있다는 게 요즘은 위로가 된다. 도미노처럼 믿음이 무너지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영화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판타지이자 선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진숙과 춘자가 병들고 오염된 바닷속에서도 진실과 신뢰를 찾았듯,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빛나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풀지 못했던 오해가 있다면 <밀수> 속 대사를 빌려 관계를 회복하는 그런 여름이 되길. 그래서 , 나 모르냐?’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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