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있는 ‘반기문 대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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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있는 ‘반기문 대망론’
  • 잡지명매경 이코노미 Economy


프랑스의 초기 사회주의 사상가 샤를 푸리에는 인간 행동의 가장 근본적 동력으로 열정(Passion)을 꼽았다. 그런데 그는 이런 열정이 인간의 본능인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에 의해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에의 본능에 의해 역사의 동력이 만들어진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요새 우리나라 정치권과 국민 여론의 모습을 보면, 이런 푸리에의 주장이 그대로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바로 ‘반기문 신드롬’ 때문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현재 대선 후보 지지율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여당과 야당 모두 반기문 총장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여당은 친박계의 세미나에서 반기문 총장 대선 후보 가능성을 공공연하게 얘기했다. 야당, 그중 특히 동교동계가 반기문 총장은 원래 우리 사람이라는 식으로 반기문 영입론을 띄우다가, 이제는 노골적인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은 지난 11월 3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자신의 회고록 ‘순명’ 출판기념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반기문 사무총장 쪽에서 와서 (반 총장이) 새정치연합 쪽 대통령 후보로 나왔으면 쓰겠다(좋겠다)는 의사를 나한테 타진하기에 ‘반기문 총장을 존경한다. 훌륭한 경력에 온건 성향까지 그만한 훌륭한 분이 없다’는 얘기를 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그뿐 아니라 권 고문은 “반기문 총장 쪽 인사가 ‘여당(새누리당)에는 안 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전했다”고 주장했다.
여기까지 얘기를 종합해보면 반기문 사무총장에 대한 대선 후보론은 새누리당이 세미나를 통해 먼저 시작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이 강하게 반격한 셈이 된다. 여기에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가세했다. 박지원 의원은 “그분(반기문 총장)하고 가깝다고 하시는 분들이 권노갑 고문에게 몇 개월 전부터 많이 접촉을 했어요”라며, 그 측근의 실체에 대해서는 “반기문 총장 동생이 그분(측근) 회사에 주요 간부로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이쯤 되면 측근들이 진짜로 새정치민주연합에 접촉을 시도했다고 믿을 수 있는 상황이다.
새누리당도 영입 시도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해 5월 새누리당 고위 당직자가 반 총장의 핵심 측근인 정부 고위 당국자를 통해 영입 의사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 당국자는 곧바로 반 총장에게 그 사실을 전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누가 먼저 영입 시도를 했나, 아니면 누가 먼저 영입 제의를 받았나 하는 이른바 “원조 논쟁”이 붙을 판이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반기문 총장은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 반기문 사무총장 측은 한국 내 정치권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반기문 대망론’에 대해 “아는 바도 없고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 10월 4일에는 아예 “최근 일부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 반 총장의 향후 국내 정치 관련 관심을 시사하는 듯한 보도를 하고 있다. 앞으로 여론조사를 포함한 국내 정치 관련 보도를 자제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여기서 반기문 대망론에 대해 ‘아는 바도 없고 사실도 아니다’라고 한 부분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나 새누리당 측 주장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즉 새누리당 혹은 새정치민주연합 아니면 반기문 총장, 이렇게 셋 중 하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데, 과연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지 밝힐 필요가 있다.
물론 반 총장의 영입을 여야가 너도나도 주장하고 나선 것은 그만한 ‘내부적’ 이유가 있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새누리당은 친박계가, 새정치민주연합은 동교동계가 반기문 대망론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당내 비주류나 아니면 뚜렷한 대선 후보를 찾지 못한 계파에서 반기문 카드를 주장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혹자는 반기문 총장 카드가 상대 계파를 제압하거나 밀리지 않기 위한 일종의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분석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새누리당 친박계의 위상과 새정치민주연합 내 동교동계의 위상은 크게 다르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새누리당내의 친박계는 수적 열세이고, 또 자기 계파 내에 대선 후보가 없어서 그렇지 당내 비주류로는 볼 수 없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내의 동교동계는 명실상부한 비주류다. 때문에 반기문 총장의 영입에 대한 절박성은 새정치민주연합 측의 동교동계가 오히려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새누리당의 친박계는 ‘킹’이 되고자 하는 인물이 없어 ‘킹메이커’를 자처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행동반경이 오히려 넓어질 수 있는 강점을 갖고 있다.
여기서 반기문 신드롬이 정치권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국민 여론을 정치권이 받아들인 것인지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 반기문 총장 지지율은 압도적으로 높다. 그래서 정치권이 의도적으로 반기문 띄우기에 나선 것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반기문 총장의 지지율은 왜 이렇게 높을까? 먼저 반 총장의 이미지가 비정치적이라는 요인을 들 수 있다. 이는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정치권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와 유사한 측면이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기존 정치와 정치인에 식상한 사람들이 안철수나 박원순 같은 ‘참신한’ 인물에 열광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참신함에 대한 열광’은 과거에도 있었다. 과거 우리 국민들은 박찬종 전 의원에게 열광했고 그 이후에는 고건 전 총리에게 열광했다. 이후 이런 열광은 안철수로 이어졌고 이제는 반기문이다. 이런 현상은 한마디로 우리 정치가 국민들에게 제대로 신뢰 한 번 주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어서 씁쓸하다.
이번 ‘반기문 현상’ 또한 과거 사례처럼 일종의 이벤트로 끝날 것인가? 개인적 의견이지만 아니라고 생각한다. 안철수 현상과 반기문 현상을 비교해보자. 안철수 의원은 의대 출신 컴퓨터 백신 개발자에 불과했다. 단지 벤처신화와 무료 백신 보급으로 유명세를 탔을 뿐이지, 정치적 능력이나 행정적 경험은 전무했다. 반면 반기문 사무총장은 외교부 장관과 청와대 수석을 지냈다. 한마디로 안철수 의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관료 경험과 정무적 감각이 있다. 정무적 감각 없이, 관료가 장관과 수석까지 지내기는 힘들다. 이뿐 아니다. 안철수 의원의 경우, 세(勢) 없이 자신의 유명세만 믿고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반 총장이 정치판에 뛰어들 경우 사정은 다르다. 새누리당이든 새정치민주연합이든 자신의 계파에서 대선 후보가 없는 쪽이 반 총장을 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야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같은 인물이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며 대권에 도전할 경우, 위기감을 느낀 새누리당은 반기문 총장을 무혈입성시킬 수도 있다.
이뿐인가. 반 총장은 충청도 출신이다. 안철수 의원은 부산이 고향이다. 고향이 영남인 대권 잠룡은 안철수 의원만이 아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부산 출신이고,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는 대구 경북이 고향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역시 부산 출신이다. 박원순 시장 또한 영남이 고향이다. 한마디로 대권 잠룡 전부가 영남 출신이다. 상황이 이러니 충청 출신인 반기문 총장은 나름 강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특히 충청권의 인구가 호남 인구를 능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충청 출신이라는 점은 엄청난 강점이다.
과거에는 호남에 기반을 둔 정당이 영남 출신 대선 후보를 밀면 영남 일부와 호남의 표를 집결시켜 대권을 거머쥘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는 의미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영남에 기반을 둔 정당이 충청 출신 대선 후보를 밀면 영남과 충청의 결합이 이뤄져 당선 가능성을 상당히 높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새누리당이 반기문 총장에게 눈독 들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안철수 의원은 참신한 이미지만이 유일한 무기였다면 반기문 총장은 참신함에 세계 평화를 유지하려 애쓰고 있다는 현실적 이미지마저 갖고 있다. 그러니까 안철수 의원에게 실망한 국민들이 현실적 대안으로 반기문 총장을 얼마든지 지지할 수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반기문 신드롬’은 반 총장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반기문 신드롬’은 오히려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을 그만두는 2016년 이후에 보다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반기문 총장은 본의 아니게 국내 정치의 한가운데 서게 됐다. 이런 상황을 그가 어떻게 이용할지, 또 어떤 결심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출처] 매경 이코노미 Economy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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