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돌아온 의사

 

콩고민주공화국 키부주 부카부의 판지병원에서 ‘2018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드니 무퀘게 박사가 인터뷰하고 있다.
“평소와 다름없던 날, 병원에 전화가 왔습니다. 수화기 너머 한 동료가 눈물로 애원했습니다. ‘구급차 좀 보내주세요, 빨리.’ (중략) 2시간 뒤 구급차가 돌아왔습니다. 18개월 여자 아기가 타고 있었습니다. 아기는 엄청나게 피를 흘려, 곧바로 수술실로 옮겨졌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간호사들은 울고 있었습니다. 아기의 방광, 생식기, 직장이 심각하게 손상됐습니다. 성기 삽입 때문에요. 우리는 침묵 속에 기도했습니다. 신이시여, 우리가 보는 게 사실이 아니라고 말씀해주십시오. 나쁜 꿈이라고, 깨어나면 모든 게 괜찮을 것이라고 말씀해주십시오. 그러나 나쁜 꿈이 아니었습니다. 현실이었습니다. 그것이 콩고민주공화국(이하 DR콩고)의 새로운 현실이 됐습니다.”

 

남키부주 눈두병원에서 성폭력 예방·대처법 워크숍에 참석한 여성들.

슬픈 수상 소감

2018년 노벨평화상 공동 수상자인 드니 무퀘게의 수상 연설 일부다. DR콩고에서는 1996년 내전이 시작된 이래 전체 인구 중 600만 명 이상이 숨지고, 여성 180만 명이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추산된다. DR콩고 정부가 2003년 선언한 내전 종식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이는 없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무퀘게는 내전이 시작된 뒤 DR콩고의 ‘새로운 현실’이 된 이 잔혹한 전쟁범죄에 맞서, 피해 여성들을 치료하고 자립을 도운 공로로 이라크 여성 운동가 나디아 무라드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올여름 동부 아프리카를 방문했다가 몇 차례 무퀘게를 만났고, 8월3일 DR콩고 동부 키부주의 부카부에 있는 판지병원에서 그를 인터뷰했다.

판지병원은 부카부에서도 빈민촌에 자리잡고 있었다. 도심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을 지나야 한다는 뜻이다. 이곳을 지날 때, 현지 운전사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차 문과 창문을 단단히 잠그는 걸 보고서야 위험을 실감했다. 통역은 차창 밖 한곳을 가리켰다. 마침 누군가 행인의 가방을 칼로 찢고 물건을 훔쳐 달아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고, 저렇게 훔친 물건은 이 동네에서 누군가에게 팔린다. 여기서는 절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서는 안 된다. 바로 달라붙어 휴대전화를 빼앗은 뒤 인파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먼지가 끊임없이 일던 판자촌을 지나자, 출입문이 나왔다. 안으로 들어서자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로 번듯한 병원이 있었다. 시설은 유엔군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그간 쌓은 명성으로 많은 기부를 받았겠지’ ‘무퀘게는 만나기 힘든 유명인이 아닐까’ 짐작했다. 그 생각은 편견이었음을 금세 확인할 수 있었다. 무퀘게는 자신을 찾아오는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겸손함을 그대로 지니고 있었다. 그 인품과 기운에서,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이 무퀘게를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나 인도의 민족해방운동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와 비교하는지 알 수 있었다.

“1996년 10월6일 르완다에서 건너온 군인들이 제가 일하던 병원에 들이닥쳤습니다.”


무퀘게는 23년 전 ‘그날 밤’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었다. 내전 중인 르완다에서 DR콩고로 건너온 반군이 그날 밤 지방 소도시 르메라에 있던 무퀘게의 병원에 난입했다. 환자 30여 명이 침상에서 아무 저항도 못한 채 총에 맞아 숨졌다. 야근하던 직원들도 살해됐다. 무퀘게는 이후 정신적 충격으로 환자를 진료할 수조차 없었다. 환자를 보호할 책임이 있는 의료인으로서 환자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키부주 미넴브웨병원에서 영양실조 상태로 갓 출산한 여성.

하루 7∼8명 성폭력 피해자 입원

산부인과 의사로서 ‘모성사망’(아이를 낳다 숨지는 것)을 막는 일이 자신의 소명이었음을 다시 깨닫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그는 부카부에 텐트 두 개를 쳐서 다시 병원을 세웠다. 제2차 콩고 전쟁(1998~2003년) 시기에 또 모든 것을 빼앗겼지만, 1999년 버려진 집 두 채에서 판지병원을 시작했다. 그때 무퀘게가 처음 진료한 환자는 “이전에 본 적도 없는” 성폭력 희생자였다. 성폭행을 당한 뒤 성기에 총상을 입은 채 실려온 환자였다. “그저 광기처럼 느껴졌다. 당시엔 이처럼 많은 성폭력 희생자를 돌보게 될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이후 지금까지 판지병원에서는 여성 5만 명 이상이 치료받았다. 요즘도 하루 7~8명의 성폭력 피해자가 입원한다. 내전 초창기에는 성인 여성 피해자가 주로 입원했지만, 요즘은 18살 미만 청소년과 어린아이의 비율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전쟁은 시민사회에서 모든 규범의 작동을 정지시킨다. 평화로운 시기에 당연히 금기시되는 온갖 무자비하고 비도덕적인 행위를 ‘일반적인 것’으로 둔갑시킨다. 많은 여성이 성폭행당한 것도 모자라 그 자리에서 총살당한다. 총알이나 대창으로 성기를 관통시켜 영구 손상을 입히는 잔악한 범죄도 잦다. 그 과정에서 임신하는 이도 많다. 성폭력 자체도 끔찍하지만 그 뒤 보호받기는커녕 마을 주민과 가족에게서 버림받거나 부끄러움을 강요받는 2차, 3차 피해도 흔하다.

DR콩고에는 “사람은 어머니를 잃었을 때만 고아가 된다”는 말이 있다. 어머니가 숨지면 아버지가 재혼하고 남은 자식들은 길거리로 나앉는 경우가 많다. 반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끝까지 싸우고 자식이 거리로 내몰리지 않도록 모든 것을 한다. 무퀘게는 “정부군이든 반군이든 성폭력을 무기로 삼는 자들은 ‘한 사회를 약화하려면 여성을 공격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며 “남성을 죽일 때보다 여성을 파괴했을 때 그 사회를 다시 일으키기가 더 어렵고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무퀘게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폭력의 고통에서 회복해 ‘지역사회 리더’로 거듭난 DR콩고 여성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는 “우리가 치료한 여성의 명단이 5만 명 이상인데, 그중 누군가를 고르는 일은 쉽지 않다”면서도 “여성에게 내재한 힘을 얘기할 때 생각나는 여성”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 여성의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은 모두 살해됐다. 여성도 반복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끝에 아이 2명을 낳았지만, 경이로운 생명력으로 살아남았다. 무퀘게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여성은 사회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성폭력 피해자 지원기관을 세운 상태였다. 무퀘게가 어떻게 지내느냐고 묻자 여성은 이렇게 답했다. “피해 여성들의 비극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들을 도울 때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다.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건 정말 굉장한 일이다.”

 

정부 비판했다가 습격당하기도

무퀘게는 피해자를 돕는 데 그치지 않고 DR콩고의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도 힘을 쏟았다. 그 과정에서 정치인도 아닌 그가 수많은 ‘정적’을 만들었다. 2012년 유엔에서 성폭력 가해자를 처벌하지 않는 DR콩고 정부와 국제사법재판소를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가, 귀국 직후 습격당했다. 경호원 한 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고, 무퀘게는 몇 개월간 DR콩고를 떠나 미국 보스턴에서 머물었다. “그 순간에는 ‘이게 정말 마지막’이라고, ‘충분히 겪었다’고, ‘더는 이곳에 머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는 국외에서의 안락한 삶을 뒤로한 채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 “나를 다시 DR콩고로 이끈 것은 여성들의 용기였다.” DR콩고 여성들은 유엔 사무총장과 DR콩고 대통령에게 무퀘게의 귀국과 안전 보장을 촉구하는 편지를 썼다. 누구도 답변하지 않자, 여성들은 금요일마다 과일과 채소를 팔아 모은 돈을 판지병원으로 들고 왔다. 무퀘게의 입국 비행기 티켓을 마련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언제나 나를 지속시키는 것은 여성이고, 내 일을 하도록 자극하는 것도 여성이다. 내가 오늘날 무엇을 하든 간에 그것은 여성들 때문이다.” 무퀘게는 최근 판지병원 근처에 있는 ‘시티오브조이’를 방문했다. 무퀘게와 인권운동가들이 성폭력 피해자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세운 기관이다. 판지병원에서 치료받은 여성들이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심리치료와 기술교육을 병행한다. 시티오브조이에 머무르는 한 여성이 “20년간 나를 보호해주는 이 없이, 어떤 희망도 없이 살아왔는데 이곳에서 아버지(무퀘게)를 새로 얻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다. 무퀘게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 안에서 순수한 책임감이 생긴다”며 “여성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 그들이 싸우는 방식, 그들의 용기가 나를 이전의 나 같은 사람으로 살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외부 의사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반나절을 걸어 병원에 도착한 여성들이 미넴브웨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는 모습. 눈두병원과 미넴브웨병원에는 드니 무퀘게의 의료활동에 영향받은 젊은 의사들이 포진해 있다.

무퀘게를 지도자로 원하는 여론

무퀘게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뒤 DR콩고 사회에 여러 변화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올해 안에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국제사회의 보상금이 조성된다. 무퀘게에게서 희망을 찾은 이들 사이에 그를 ‘정치 지도자’로 세우고 싶어 하는 여론도 상당히 높다. 정작 무퀘게는 “본디 하는 일을 할 때 내 옷을 입은 듯이 편하다. 아직은 정치인이 아닌 의사, 시민의 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누군들 자기 어머니가 오늘날 (DR콩고에서처럼) 고통받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그들의 딸이나 아내가 고통받는 것을요.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다면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면 안 돼요.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휴머니티, 즉 인간애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는 일이고 그런 인간애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 제가 꼭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저한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일이에요. 저한테는 지금까지 해왔던 의료활동이 더 중요해요. 오늘의 저는 그저 시민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시민은 도시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고, 한편으로 그것이 바로 정치입니다. 언젠가 제가 의료계를 떠나 정치에 입문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아마 그것은 또 다른 도전일 거예요.”

 

[출처] 한겨레21
ⓒ 본 콘텐츠는 발행사에서 제공하였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며 무단 전재, 재배포 등을 금합니다.


포스트 공유하기     
한겨레21

한겨레21

정기구독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