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手作] 장인의 마음으로 / 이지숙, 공예가

일 자체를 위해서 일을 잘 해내려는 욕망으로 사는 사람, 장인. 

장인 노동은 모든 방면에 두루 걸쳐 있다.

작업과정을 들여다보면 실기 없이 예술은 존재할 수 없다.

아무리 훌륭한 예술가라고 해도,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구상이 회화 작품은 아니다.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 <장인 The Craftsman>

 

2020년 새해가 시작된 지 며칠. 하루살이처럼 사는 이에게 해가 바뀌는 게 무슨 큰 의미일까? 하루를 잘 살자고 다짐하고 매일을 살아나갔더니 그게 한 달이 되고 한 해가 되어 작업한 지 30여 년이 흘렀다.

나는 장인의 마음으로 흙 작업을 하며 사는 전업 작가이다. 생각하면 바로 몸을 움직여야 하고 작업의 결과물이 나와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작업이 새로운 작업을 낳는다. 몸을 움직여 작업으로 풀어나가는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한 탓이다. 머릿속 생각은 작품이 아니다. 치열한 작업과정을 거치는 동안 재료는 생각으로 닿지 않던 어떤 지점으로 나를 다그치며, 재료 자체의 물성을 드러내어 보다 능숙하게 다뤄달라는 기술적인 요구를 한다.

늘 흙을 다루지만 여전히 휘고 갈라지고 터지는 경우를 맞게 된다. 작업에 대해, 재료를 다루는 기술에 대해 겸손해야 하는 지점이다. 흙과 아크릴 물감의 조합 역시 작업하며 얻어진, 재료에 대한 실험과 경험의 산물로 찾아낸 작업 방식이다. 절대적인 작업시간과 노동 없이 무엇 하나 그냥 얻을 수 있을까? 촘촘한 작업시간의 중첩은 재료의 이해를 높여 마음에 품은 생각을 현실 세계로 이끈다.

완성도 높은 작품은 다음 작업의 열쇠를 갖고 있다. 작업실에서 작업은 온전히 내 것이지만, 문지방을 나서는 순간 전혀 새로운 이야기가 된다. 작품은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움직인다. 작업자인 나마저도 주체 아닌 객체가 되어 남의 것을 바라보는 듯한 순간을 맞게 된다. 적당한 공간을 가지고 조명을 받은 작품은 그제야 내게 말을 걸며 다음 작업의 열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오늘도, 어젯밤 아니 오늘 새벽 3시까지 작업하다 두어 시간 쪽잠을 자고 일어나 다시 작업. 이동시간을 빠듯하게 남겨놓고 마지막 초치기 신공을 부리다 파주로 달려가 작품 촬영을 겨우 마쳤다. 오라는 눈이 오지 않는다고 투덜대지만, 외부 일정을 잡아놓은 주제에 눈이 아닌 겨울비라고 탓할 처지인가.

며칠 지나면 만으로도 50인데 철없는 건 여전하다. 어떤 작업을 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고 말도 안 되는 발 작업을 쏟아내던 시간을 지나 지금은 늘 몸과 시간이 마음을 따라주지 못하는 그냥저냥 괜찮은 작업들을 만들어내는 작가로서 바쁜 시간을 살고 있다. 20대에 전업 작가를 희망하며 그려본 미래의 나는 최소한 회사원 예술인이었다. 9시 출근, 5시 퇴근, 주말이 있는 매우 아름다운 전업 작가 말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는 더 많은 전시 스케줄과 작업을 하려다 보니 흙 작업과 목공 작업을 하는 작업실 말고도 집에 채색 작업을 할 공간을 두어 퇴근 후, 주말에도 작업할 수 있는 상태로 나를 밀어놓았다.

출퇴근도 없고 주말도 없는 생활은 회사원이 아니지. 심지어 볼 빨간 갱년기는 잠을 잊은 그대에게 세필 잡고 오밤중까지 작업할 은혜로운 시간으로 이끌어 주니, 이건 땀은 좀 흘려도 고마워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발등에 불 떨어진 듯 작업으로 밀어붙이는 비상 상황이 전업 작가의 일상이라니 나한테 너무한 건가 싶지만. 혹시 내가 원래 이런 걸 좋아하고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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