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가 버무려진 세월의 맛 | 김윤미



 

 

김복이(74) 할머니의 음식은 한식보다 중국식에 가깝다. 우리가 잘 쓰지 않는 샐러리가 만두소에 들어가고, 고추기름을 사용한 건두부무침도 생소하다. 만주에서 나고 자란 세월은 음식에도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그녀는 한순간도 고국을 잊은 적이 없었다. 아버지에게 한국말을 배웠고, ‘남북이 통일 되면 꼭 한국에 가리라’는 어머니의 넋두리를 자장가 삼아 매일 잠들었다.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사는 김복이 할머니는 이따금 만주에서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만두를 빚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차가운 바람에 꽁꽁 얼린 만두는 유용한 겨울식량이 되어 만주의 춥고 긴 겨울을 든든하게 해주었다. 1930~40년대는 많은 조선인들이 만주로 이주해 새로운 삶을 시작했던 시기였다. 그녀의 부모도 그중에 하나였다. 부모는 돈벌이 를 위해 고향 경주를 떠나 만주 용정에 정착, 농사를 지으며 자식도 낳고 살림을 꾸려갔다. 그때만 해도 전쟁이 나서 고향에 돌아갈 수 없게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5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난 김복이 할머니는 만주에서 나고 자랐지 만 한순간도 조국을 잊은 적 없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직접 우리말을 가르쳤으며, 통일이 되면 꼭 조국에 가야 한다고 입이 닳도록 일러줬다. 특히 셋째 딸인 그녀의 손을 잡고 신신당부하던 어머니의 말이 잊히질 않는다. “내가 죽고 없더라도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다 찾으라. 너는 중학교까지 나왔으니까 네가 해야 한다.” 위로 언니가 둘 있었지만 총명하고 더 많이 배운 그녀에게 전해진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이었다.



일찍 시집간 언니들을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건사하며 집안 살림을 책임지느라 결혼도 늦게 할 만큼 효녀였던 그녀는 어머니의 당부를 늘 되새겼다. 어머니가 알려준 고향집 주소로 편지를 써보냈다. 여전히 친지들이 그곳에 살고 있을 거라는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날아든 반가운 답장에는 뜻밖에도 외할머니가 2년 전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적혀 있었다. 그 충격으로 쓰러진 어머니는 영영 반신불수가 되었다. “삼촌이 우리를 초대하려고 했는데 당시는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기 전이어서 쉽지 않았어요.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하러 두 번이나 가셨는데 모두 헛걸음이 되었지요.” 이듬해인 1992년 드디어 중국과 대한민국은 수교를 맺었고, 1994년 항공노선이 취항하며 비행기도 오가게 되었다. 하지만 몸져누운 어머니는 끝내 고국에 가보지도 못하고 숨을 거두셨다.


2002년 12월 6일. 김복이 할머니는 그날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녀가 생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날, 어머니의 경주 고향집에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감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고향집에 가면 감나무가 있을 거야. 아직 열매를 맺고 살아있을 거다”라던 어머니의 말처럼 가지 끝에는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이 탐스럽게 달려 있었다.


그녀는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날부로 가족들과 떨어져 한국생활을 시작했다. 다행히도 남편은 우리는 한국 사람이니 한국에 살아야 한다며 아내의 선택을 지지해주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살아온 환경과 너무나 다른 문화에 적응하기도 힘들었지만 중국에 있는 남편과 자식들이 그리워 매일 눈물바람이었다. “횟집 에 취직해 먹고 자고 했어요. 남들은 80만 원 주는 월급을 나는 일 잘한다고 100만 원 받았거든요. 그런데도 눈물을 달고 지내니 별명이 ‘울보 할머니’였어요. 나는 중국에 전화라도 하지, 어머니는 연락도 못하고 얼마나 힘드셨을지….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2005년 드디어 중국의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게 되었다. 부모가 한국에 호적이 있고 친인척이 보증을 서주면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국적법이 개정된 덕분이었다. 그 이후 남편과 3남매도 한국으로 건너와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김복이 할머니가 한국에 터를 잡고 지낸지도 어언 20여 년이 되어간다. 이제 진짜 한국 사람이 된 것 같은데 중국에서 나고 자란 세월이 길기에 그녀의 음식은 여전히 중국식이다. 그녀의 연변식 만두에는 한국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샐러리를 넣어 특유의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살짝 데쳐 넣으면 냄새가 강하지 않아요. 끓는 물에 삶아 먹으면 더 맛있어요. 만두가 둥둥 뜨면 다 익은 거니까 그때 건지면 돼요.” 중국에서 즐겨 먹던 건두부도 그녀가 자주 찾는 식재료다. 면처럼 얇은 건두부를 고추기름에 버무린 건두부무침은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 계속 손이 가게 된다. 이밖에도 가지튀김, 영채김치 등 그녀의 음식들은 이국적인 맛이 물씬 풍긴다.


그녀의 막내딸은 점점 엄마가 해주는 중국음식이 맛없어진다고 웃으며 말한다. 나이가 들어 솜씨가 예전 같지 않을 수도 있고 어느덧 한국식으로 손맛, 입맛이 길들여진 걸 수도 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건 여전히 즐겁기만 하다. 지난가을에는 집 앞에 위치한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선생님, 아이들과 샐러리물만두도 만들고, 영채김치도 담가 함께 맛보았다. 다니던 일을 그만두고 손녀를 돌보며 마을 어린이도서관과 동네일에 솔선수범하는 그녀는 손녀 이름을 따서 ‘이동이 할머니’로 불린다. 조국 대한민국에서 맘껏 뛰놀며 자라는 손주들을 보고 있노라면 더 이상 여한이 없으니 하늘에 계신 부모님을 뵐 낯이 조금은 선 것만 같다.

 


글 김윤미 기자 사진 한영희

 



[출처] 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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