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얼굴] 새 생명과 나를 위한 내적 공간을 / 이소은, 가수·변호사

아이를 갖는 과정에 어려움도 겪었고 임신 기간도 그리 편하지 않았던 터라, 2020년 봄에 태어날 아기와 하고 싶은 게 많았다. 엄마라는 타이틀을 달고 우리 가족의 새 구성원을 축하하기 위한 크고 작은 가족 행사를 계획했고, 아기와 함께 경험하게 될 색다른 일상과 워킹맘으로 멋지게 살아갈 날들에 대한 기대도 많았다.

하지만 국제사회를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판데믹은 아기의 출산 예정일 즈음에 내가 사는 뉴욕에 감염자의 피크를 찍었고, 하루아침에 180도로 달라진 세상은 무거운 몸보다 더 무겁게 내 마음을 짓눌렀다. 감염자 수가 아닌 사망자 수가 하루에 천 명이 넘던 뉴욕에서, 새 식구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해 놓은 모든 계획은 무너졌다. 늘 활기가 넘치던 도시는 고스트 타운이 되어 버렸고, 바깥출입은커녕 출산이 예정되었던 병원에도 감염의 위험 때문에 못 가게 되어서 막달에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내 일생에 가장 큰 이벤트의 소중한 순간들을 가족들과 나눌 수 없는 것이 내 마음을 가장 힘들게 했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정드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초기에는 자신이 낳은 생명이 너무 낯설어서 예쁜지 어떤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출산 선배들에게서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아기를 향한 마음은 바로 열렸다. 원래 아기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고슴도치 엄마처럼 처음부터 아기에게 마음을 빼앗겨 나와 남편을 교묘히 섞어놓은 모습 하나하나가 신기하고 예쁘기만 했다.

오히려 낯선 건 나 자신한테서였다. 하루아침에 주어진 엄마 역할과 그 역할에 대한 내 몸의 반응이 낯설었다. 내 존재감에 대한 묘한 흔들림이 혼란스러웠고, 이 시기에 가장 필요한 부모님과 다른 가족들을 볼 수 없는 상황이 출산 후의 우울감을 극대화했다.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어야 하는 격리 생활과 폐쇄된 도시는 신생아를 돌보는 데 필요한 도움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당연시했던 사람과의 만남이 단절되자 이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 지에 대한 불안감이 미세 먼지처럼 몸과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 게다가 매일같이 들려오는 판데믹의 희생자 소식과 내 주변의 사망 소식은 예민해진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아기가 태어나고 열흘이 채 되지 않았을 때 38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았고, 반복되는 모유 수유와 수면 부족으로 극도로 피곤한 상태였다. 아기가 잠을 자는 틈을 타 아침을 먹고 아주 짧은 여유를 가지려고 하는데, 남편이 잠깐 컴퓨터에서 보여줄 것이 있다면서 나를 불렀다. 인터넷으로 또 무슨 주문을 하려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화면을 보니, 화면에는 엄마 아빠 언니 형부 조카들 이모들까지, 우리 가족의 얼굴이 가득 차 있었다. 서울, 신시네티, 뉴욕-장소는 뿔뿔이 흩어져 있었고 같은 시간대도 아니었지만 다들 약속한 시간에 화상으로 내 생일을 축하하고 있었다. 화면에 가득 찬 우리 가족의 얼굴을 보며 눈물이 핑 돌았다.

지금 세계가 겪고 있는 위기를 대하는 심정은 상실을 겪은 후 나타나는 슬픔의 다섯 단계에 비유될 수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상황을 부정하고, 다음은 화가 난다고 한다. 상황과 협상을 시도했다가 다음은 깊은 슬픔에 빠지고, 마지막으로 결국 상실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내적 힘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지난 몇 달 동안 화가 나는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바이러스의 궤적과 이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리더들에 대한 화, 그리고 내가 바라고 원하던 방식으로 아기와 만나지 못한 상실감으로 슬픔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내 생일날 멀리서 나를 위해 모인 가족들의 모습은 여러 원인으로 나 자신에게 타인이 되어있던 나를 내 의지로 다시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었다. 

언제쯤 상황이 호전될지, 예전의 평범한 일상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내 아기가 아는 유일한 세상의 얼굴이 되는 이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면서 내가 느끼는 상실감을 내려놓으려고 한다. 그래야만 새 생명을 위한, 그리고 나를 위한 내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되는 모노톤의 시간에 색을 입힐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때다. 훗날 아이에게, 그녀가 태어난 2020년의 소용돌이를 무용담처럼 웃으며 이야기해 줄 수 있게 말이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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