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판사월간에세이
- 잡지명월간에세이 Essay
전통, 그리고 전통 장신구. 아무런 관련도 없었던, 그저 조상들의 어느 옛것 같았던 이 단어가 자연스럽게 우리 삶 속으로 들어오는 일. K-pop의 끝없는 인기와 한국을 향한 애정 어린 관심이 우리의 옛것, 전통의 것들을 현대로 불러와 화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다. 수많은 의상 중 유독 한복이 더 관심을 받고 극찬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비슷한 무언가가 아닌 대한민국 고유의 것, 수많은 의미와 미적인 요소가 넘쳐나는,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던 고유의 것!
나는 처음부터 전통 장신구에 관심이 있어서 작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일반 주얼리 브랜드를 운영하며 일하던 중 우연히 대학교 때 진행했던 과제물을 꺼내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처음 만났던 전통 장신구와 노리개들에게 온통 마음을 뺏겨 작업한 전통매듭 디자인 주얼리였다. 때마침 전통 한복을 비롯해 다양한 디자인의 현대적인 한복이 새롭게 도전의 길을 걷게 되었고,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한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였던 터라 자연스럽게 십 년 전에 그려둔 이 디자인과 전통 장신구를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타이밍이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창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멈춰있던 시기였지만, 무작정 브랜드를 만들고 작업을 시작했다.
한복은 더 예쁘게, 더 편하게 계속해서 발전하고 조명 받으며 현대화되어 가는 시점에서 왜 전통 장신구는 옛것 그대로 남아있어야 할까. 한복은 현대복으로도 착용 가능한 시대가 되었는데, 왜 전통 장신구는 그대로 조상들만의 것으로 남아있을까. 바로 이러한 질문에서부터 출발한 디자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금속 작업으로 전통 장신구와 노리개를 만들어보자 고 했고, 그것이 현대 주얼리로도 착용 가능한 ‘전통 장신구 주얼리’의 시작이었다.
고운 색감의 실은 사용할 수 없지만 단단한 금속으로 짜인 매듭은 단아하고 세련되었다. 그리고 가볍고 풍성한 명주실의 술을 만들 순 없지만 금속성의 체인으로 늘어진 술은 빛을 받아 반짝이며 무게감 있고 우아해 보였다. 기존의 노리개처럼 꼭 허리에만 매야 하는 틀과 여성들의 전유물이라는 틀도 벗어날 수 있도록 노리개 브로치를 가장 먼저 디자인했는데, 이 브로치가 한복이 아닌 모든 현대복에 자연스럽게 어울려 누구나 착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그 목표를 알아주기라도 하듯 다양한 무대와 화보를 통해 참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만나게 되었고, 전통 장신구가 이렇게 만들어지고 사용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새로운 시각을 알려줄 수 있는 순조로운 출발이 되어 감사했던 많은 경험이 떠오른다. 그 경험을 기억하며 오늘도 계속해서 다양한 노리개의 형태를 보여줄 수 있는 디자인을 연구하고 만들고 있다. 그렇게 전통 매듭의 종류를 공부하면 할수록 다양한 매듭의 모양과 이름에 한 번 더 놀라게 되고 그 안에 담긴 각각의 의미와 사람들의 바람이 더 다양하고 따뜻해서 두 번 놀라게 된다.
색이 한정적인 차가운 금속의 약점을 오색빛깔의 다양한 천연석이 따뜻함으로 채워줄 때 비로소 완성되는 작업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착용하는 사람의 신분이나 위치, 사용되는 시대와 자리, 선물하는 이유와 바람 등을 다양한 매듭과 아름다운 천연석에 담긴 의미로 표현할 수 있었던 전통 장신구. 이제는 이 장신구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매력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써 사용되기를 바라본다.
과거가 없다면 지금이 없고 미래도 없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것에 눈과 마음을 빼앗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 전통이 없다면 현대의 어떤 문화도 뿌리 없는 가지에 불과하지 않을까. 이제는 옛것의 한계를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장신구로, 또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굳건한 하나의 이름으로 발전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다시 디자인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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